본문 바로가기
Text/내스급

2021년 3월 20일 유현유진 전력 [냄새]

by 자렌Jaren 2021. 3. 20.

* 퇴고 X

 

 

사람은 제 몸에 자신의 생각보다 많은 냄새를 품을 수 있었다. 물론 평범한 인간이라면 제가 품고 있는 모든 향들을 맡는 일이 불가능하겠지만, 한유현이 누구던가? 대한민국의 몇 안 되는 S급 헌터, 그들 중에서도 감각이 예민한 사람이지 않던가. 그렇다보니 유현은 형에게서 흘러오는 향들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어렵지 않게 알아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행동은 자신이 길드에 있느라 형의 곁에서 떨어져 있던 동안에, 형이 무엇을 했는지 알아챌 수 있는 힌트가 되어 주곤 했다.

 

“유현아, 어서 와.”

 

점심시간에 여유를 즐기기 위해 들린 카페에서 잔뜩 묻어났을 커피향. 마수가 주인에게 귀여움 받기 위해 다리에 몸을 부벼 댄 사이 옮겨 붙은 듯한 마수의 털냄새. 세탁기를 돌렸는지 손끝에서는 아주 연한 세제의 향이 퍼졌고. 현관으로 저를 맞이하기 위해 달려오는 동안 나붓나붓 흔들린 젖은 머리카락에서는 얼마 전 형이 사온 샴푸의 향이 피어올랐다.

그 향을 맡자 제법 곤란했던 얼마 전의 일까지 기억 속에서 포르르 떠올랐다. 그날, 생필품을 사기 위해 함께 간 대형 마트에서 형이 빨간색 통과 보라색 통을 들고 어느 쪽이 더 마음에 드냐고 자신에게 묻기에, ‘형 마음에 드는 걸로 해.’라고 대답을 했더랬다. 그렇게 대답하고 형이 10분을 고민하든 30분을 고민하든, 아니 오늘 아예 이곳에서 하루 종일 고민하든 상관이 없었기에 얼마든지 형의 선택을 기다려줄 셈이었다. 하지만 형은 평소와 달리 이맛살을 살짝 찌푸리더니 ‘네가 더 마음에 드는 걸 말해, 유현아.’라고 권해왔다. 평소와는 달리, 이번에는 어영부영 못 넘긴다는 듯 굳은 얼굴로 말이다.

‘난 정말 어떤 것이든 괜찮아, 형.’ 이라는 말과 곤란한 표정도 그날의 형에게는 먹히지 않아 조금 당황했었는데…….

 

“오늘도 수고했어.”

 

신발을 벗고 형이 기다리고 있는 현관으로 올라 선 유현은 제게 인사하는 형을 가볍게 끌어안았다. 유진 또한 기꺼이 유현을 마주 안아 주었다. 그 덕분에 아직 젖어있는 형의 머리카락이 유현의 코 밑으로 더 가까이 다가왔고. 거리가 좁혀지면서 당연히 더욱 진해진 샴푸향이 콧속을 간지럽게 자극했다.

원래대로라면, 당연히 형의 체향을 가린 그런 냄새 따위는 탐탁지 않았어야 했다. 형을 감싸고도는 많은 향들은 형의 하루를 짐작할 수 있게 하기에 한 번에 제 불로 태워 지워버리지 않는 것뿐이었다. 만약 한유현이 정말로 좋아하는 향만을 형에게 남겨두고자 마음먹었더라면, 진작 모든 향을 제 불로 태워 없애고 불의 잔향까지 모두 떠나고 난 후에 남은 형의 체향만을 즐겼을 것이다. 그 정도로 한유현은 형의 체향이 아닌 다른 향에는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어쩐지, 지금 제 코끝에서 살랑살랑 거리는 향은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그 향을 맡는 순간 자연히 떠오르는 기억 때문에. 달궈진 돌처럼 묵직하게 심장에 얹어진 그 기억에서 피어나는 온기 때문에. 한유현은 그 향기를 기억했다. 신경이 쓰였다.

 

‘이걸로 할게.’

 

결국,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고르지는 못하고. 두 가지의 향 중 형에게 더 어울릴 것이라 생각되는 향을 가진 샴푸를 골라냈던 그날. 유진은 ‘이게 더 좋아?’라고 물으며 마치 천금을 얻은 것처럼 만족스럽게 웃어보였다. 내 동생이 좋아하는 것을, 이렇게 하나 더 알게 되었다며.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형은 한껏 기쁨을 내보였다.

유현은 거기에 구태여 형을 생각하며 고른 것이라고, 내가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자신의 선택이 형을 저렇게 기쁘게 한다면, 자신은 오늘부터 그 향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면 되는 것이니까. 지금까지의 한유현을 한유진이 만들었듯. 이 향기를 좋아하는 한유현 또한, 결국 형이 있기에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면 될 일이니까.

형을 끌어 안은 채 저를 향한 형의 지극한 애정의 증거로 기억에 남은 그 향을 한 번 더 깊이 들이마신, 유현은 느리게 입을 열었다. 오늘도 제 집으로, 형에게 무사히 돌아오게 된 것을 감사하며.

 

“다녀왔어, 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