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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내스급

2020년 11월 21일 유현유진 전력 [난로]

by 자렌Jaren 2020. 11. 22.

* 퇴고 X

* 수인 설정

 

 

 

바닥에 깔린 것도 몸을 덮은 것도 그저 찬연한 햇살뿐이었지만, 유진은 조금도 불편한 줄 몰랐다. 계절은 어느새 건물 밖으로 나설 때 코끝이 서늘해지는 시기가 되었건만. 지금의 유진은 그저 계절도, 시간도 알지 못하는 어린 애가 된 것처럼 바닥에 편안히 늘어져 있을 뿐이었다.

그건, 지금 유진이 손끝 하나 까딱할 힘도 없기 때문이기도 했고. 손끝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괜찮은 상황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무런 근심도 없이 그저 제 옆에서 들려오는 숨소리에만 집중해도 되는 시간. 오랜만에 주어진 단 형제 두 사람만으로 가득 채워진 시간은 이렇게나, 편안하고 깊었다.

유진은 옆으로 누워 제 허리를 꼭 끌어안은 채 제 맨가슴에 얼굴을 묻고 있는 유현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 보았다. 어젯밤 내내 욕조에 잠겨 있을 때는 축축하게 젖어 늘어졌던 굽실거리는 머리카락이 바싹 마른 채 유진의 손가락 사이사이에 엉켜왔다. 간지럽게 손가락을 스치는 감촉이 좋아 몇 번 더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던 유진이 좀 더 손을 내려 길고 곧게 뻗은 흰 목덜미를 스쳤을 때였다.

 

“유현아, 잠깐만.”

 

단단한 손끝에 걸린 흔적을 예민하게 알아챈 유진이 화들짝 놀란 듯 손을 떼며 유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 탓에 형의 몸을 끌어안고 지그시 눈을 감고 있던 유현이 아주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마치 오페라 무대의 막이 열리듯, 느긋하게 위로 눈꺼풀이 들어 올려 지자 그 안에 숨겨져 있던 반들반들한 눈동자에 햇빛이 감겨들었다.

유진은 태어나 제가 가장 많이 시선을 맞췄을 그 눈동자를 내려다보았다. 그 눈동자가 어제까지 마주쳤던 것과 조금 다른 것이 되었다는 걸 떠올리자, 아까 전 제 손끝이 더듬어낸 흔적에 더 마음이 쓰였다.

 

“너, 여기 상처 났잖아. 괜찮아?”

 

혹여나 누르면 피를 보기라도 할까 싶어, 둥근 손가락 끝으로 부드럽게 상처를 훑는 손에는 조금의 힘도 들어가 있지 않았다. 그저, 이쯤에 상처가 있노라 알리려는 움직임은 갓 태어난 아기의 피부를 매만질 때 마냥 조심스러웠다.

 

“상처 난 줄도 몰랐어.”

“그래도 살이 패인 것 같은데…….”

“그 정도는 잠만 한숨 자도 나을 거야.”

 

맞는 말이다. S급 헌터에게 있어 이 정도의 상처는 상처라고 말하기도 우스운 것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흔적을 몸에 달고 있는 이가 한유현이라서, 제 동생이라서. 한유진은 제 걱정 한 자락을 기어이 내비치고야 마는 것이다.

오히려 그 애정 어린 걱정을 듣는 한유현은 형의 손톱을 가져다 올리면 마치 검집에 검이 꽂히듯 알맞게 딱 맞아 들어가는 그 흔적이 조금이라도 더 오래 가기를 바라고 있었지만 말이다. 유현은 제 그런 마음을 형에게 전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조용히 제 입 속에 삼켜버렸다. 걱정이 가득한 손길로 혹시나 제가 어젯밤 남긴 흔적이 또 있을지도 몰라 목을 넘어 등과 어깨를 더듬거리고 있는 형의 손길이 기분 좋았던 탓이었다.

 

“그러게 어제는 하지 말자니까.”

 

F급이 S급의 피부에 상처를 남긴다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것은 순전히, 어제 유현이 탈피를 했기 때문이었다. 뱀 수인으로 각성한 헌터들이 일이 년에 한 번씩 겪게 되는 이 현상은 한 번 겪고 나면 하루 정도는 피부가 무척 무르고 부드러워졌다. 근육이 빠지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뱀의 모습으로 변해 탈피를 하고 나서, 인간으로 돌아오면 피부가 물에 젖은 도화지처럼 무르게 변해 작은 자극에도 쉽게 상처가 나곤 했다. 그렇기에 혹여나 그 약한 피부에 제 거친 손끝이 상처를 남길까 걱정했던 것인데, 짐승의 본능을 강하게 드러내며 제 몸을 끌어 안아오는 동생을 유진은 끝내 밀어내지 못했다.

 

“하지만…… 형이 따뜻하게 해줘서 좋았어.”

 

막 탈피한 후에는 체온 조절이 더 안 되니까. 그 말과 함께 입꼬리를 살그머니 올려 짓는 웃음에 순간 유진은 눈을 깜박였다. 지금 유현의 등 뒤로 햇볕이 비쳐들고 있기 때문인 건지, 아니면 제 동생의 얼굴에서 빛이 나는 건지. 좀처럼 구별이 되지 않는 찬란함에 괜스레 눈꺼풀만 바빠지고 속눈썹이 가벼이 나부꼈다. 그 멋들어진 미소를 새길 듯 눈동자에 담아내던 유진의 얼굴이 살짝 굳은 것은, 제 가슴 위로 익숙한 감촉이 와 닿은 탓이었다. 아직도 물에 젖은 듯 반드레한 윤기가 도는 입술이 유진의 가슴에 난 지워지지 않을 상처 위에 닿았다. 유진이 어쩌면, 내일 아침 일어났을 때 그 상처가 사라져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할 만큼 성스러워 보이는 입맞춤이었다.

 

“……형이 난로라도 되냐.”

 

그래, 네가 좋았다면 된 거지. 만약 유진이 조금만 더 생각을 이어갈 수 있었더라면 유현이 더는 형이 제 상처에 대해 언급하지 못하게 입을 막으려 이런 행동을 했다는 것도 알아차렸으리라. 하지만 생각이란 것은 너무도 멀고, 제가 끌어안은 유현의 입술은 너무 가까이 있었다.

쿵, 쿵, 마치 신호를 받은 것처럼 유진은 제 심장이 조금 더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는 걸 알았다. 어젯밤 동생의 입안에 진탕 빨리고 깨물렸던 유두는 아직도 통통하게 부풀어 있었는데, 그것 또한 앞으로 이어질 자극을 예감한 듯 몸을 꼿꼿하게 세웠다.

유현은 저와 형의 몸에 쏟아지는 햇빛이 아무 것도 가려지 못한다는 사실이 새삼 고마웠다. 폭우처럼 쏟아지는 투명한 햇살만을 두른 형의 몸은 곳곳의 흔적과 체온이 훅 오르기 시작한 부분들만 발긋한 붉은 빛을 피워냈다.

이 몸을, 형을 품에 안고 더 깊이 파고들면 분명 뜨거운 체온으로 저를 녹여줄 것이다. 물러진 피부는 단 하루만의 축복이 되어, 마음껏 형의 흔적이 새겨질 테지. 사실 유진은 유현의 상처를 걱정했지만, 유현은 오히려 그 상처가 기꺼웠다. 형이, 저에게 매달리며 남겨놓은 필사적인 자국들이 이대로 피부에 새겨져 영원히 지워지지 않기를 바라기도 했다.

그러니까, 아직 조금은 이 마법 같은 시간이 남아있을 때.

 

“형이 따뜻하게 해주는 게 제일 좋아.”

 

제 몸에 형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새겨주기를.

그것을 바라며 유현은 천천히 입술을 움직였다. 달궈지는 흥분과 함께 유현의 피부에 드문드문 뱀의 비늘이 드러났다. 피부 사이사이에 마치 누군가 정교하게 그려넣은 것처럼 생겨난 비늘의 색은, 마치 밤하늘을 떼어다가 붓으로 발라둔 것 같은 깊은 검은색이었다. 그것이 햇빛을 머금고 반드르르하게 빛이 나자 고운 별가루가 흩뿌려진 하늘처럼 보였다.

유진은 마치 흑요석 같다 감탄한 그 비늘이 돋아난 부분을 눈으로 쫓다가 누운 제 위로 올라와 몸을 겹쳐오는 동생의 등에 손을 얹었다. 손가락 끝에 매끄러운 비늘이 닿자 조금 서늘한 기운이 올라왔다.

이 아름답고 차가운 몸을 기꺼이 또 데워주고자, 유진은 느리게 눈을 감으며 순순히 입을 벌렸다.

곧, 유진은 제 습하게 젖은 구멍으로 파고드는 살덩이와 더운 햇살을 꿀꺽 집어 삼켰다.

한낮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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