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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내스급

2021년 6월 12일 유현유진 전력 [숨바꼭질]

by 자렌Jaren 2021. 6. 12.

*퇴고 X

 

 

어린아이들이 단둘이 할 수 있는 놀이라는 것은 참으로 빤한 것들뿐이어서. 한유현과 한유진의 어린 시절을 채운 놀이들도 대체로 흔한 것들이었다.

눈이 오면 눈사람을 만들고. 소꿉놀이를 하자며 흙을 뭉치고. 동생을 그네에 태우고 뒤에서 밀어주거나, 순서대로 미끄럼틀을 타고. 시소를 탈 때는 아직 어린 유현이 한참 가벼웠기에 언제나 유진이 앉은 쪽으로만 시소가 기울어져서, 유진이 동생이 앉은 쪽이 내려갈 수 있도록 발로 땅을 굴러 주었다.

숨바꼭질도 그런 놀이들 중 하나였다.

가위바위보를 하고, 진 쪽이 술래가 되고. 열까지 센 후에 숨어있을 사람을 찾는 놀이.

처음 이 놀이를 배웠을 때, 유현은 숨바꼭질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형의 곁에서 떨어져 제 몸을 숨기는 것도 싫은데, 형이 숫자 10을 어찌나 느리게 세던지. 마치 저번에 본 녹은 사탕처럼 시간이 길게 늘어져 눌러 붙는 것만 같은 이상한 기분을 느끼며 놀이터 구석 나무 뒤에 몸을 웅크리고 있었더랬다.

사실 다른 놀이들도 ‘재미있다’는 감정을 느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시소를 높이 띄우기 위해 크게 땅을 박차주는 형이, 미끄럼틀 아래에서 제가 미끄러져 내려오기를 기대려주는 형이, 그네에 앉은 제 등을 아프지 않게 밀어주는 형이, ‘유현아 재미있어?’라고 묻는 목소리에는 항상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그렇게 자신과 함께하는 동안 정말 기쁜 듯 웃어 보이는 형의 얼굴을 보면서, 이런 행동들은 재미있는 것이라는 걸 배웠고, 기억했으니. 그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지도 확실히 기억했다.

응, 재미있었어. 그렇게 말하며 손이 시린 겨울에도 땀이 차는 여름에도 제 손을 꼭 잡아오는 형의 손을 잡고 길게 그림자를 늘어뜨리며 집으로 돌아가는 순간이 좋았다. 한유현은 그렇게 놀이를 배웠고, 기억하고, 재미있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런데 형과 떨어져야 하는 숨바꼭질은 그런 놀이들과는 조금 달랐다. 그렇기에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숨기는커녕, 당장이라도 벽에 기대어 눈을 가리고 숫자를 세는 형의 손을 잡고만 싶었다.

그럼에도 한유현이 형이 말하는 대로 숨는 시늉이라도 한 것은, 형이 의기양양하게 가르쳐준 놀이를 방해하고 싶지도 않기 때문이었다. 재미는 없었다. 그저 조금만, 아주 조금만 참자고.

 

“유현아.”

 

형은 어렵지 않게 자신을 찾아내줄 테니까. 다시 형의 손을 잡을 수 있게 되기까지 아주 잠시만 참자는 생각을 하며 작은 몸을 조금 더 옹송그렸을 뿐.

 

“찾았다, 내 동생.”

 

하지만 형의 목소리가 들리고, 제 몸에 닿는 형의 손이 느껴지고. 눈을 뜨고 고개를 들어 형을 보았을 때 들어온 얼굴이. 저를 향하는 무척이나 환한 그 웃음이. 정말로 재미있다는 듯, 기쁘다는 듯 웃고 있는 형의 얼굴이 좋아서.

그래서, 한유현은 그제야 이 놀이가 조금은 마음에 들었다. 참았던 만큼 더욱 가득 차오르는 것 같은 반가움에 배시시 웃으며 절 잡는 형의 손에 매달렸다. 들키는 쪽이 지는 거라든가, 다시 술래가 되어야 한다던가 하는 룰을 알려준 것도 같았지만. 그 다음의 일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제 허리를 끌어안으며 품에 매달리는 동생을 유진도 마주 끌어안고 달래주곤 했다.

놀이는 그렇게 혼자 있느라 식은 몸을 서로의 체온으로 따뜻하게 데우며 끝이 나곤 했다.

 

“형 왔어, 유현아.”

 

그러니까, 형. 이번에도. 형이 날 찾을 걸 알고 있었어.

 

“이제 집에 가야지.”

 

흰 눈밭에 무릎을 꿇고 눈이 뜨이지 않을 동생의 손을 꼭 잡은 손이 떨리고 있었다. 이미 목소리는 여름의 소나기를 맞았을 때처럼 푹 젖어있었지만, 그럼에도 끊임없이 흐르는 눈물이 뜨거워 조금도 차갑게 느껴지지 않았다.

유일하게, 유현이 형의 웃는 얼굴을 보지 못한 채 막을 내린 숨바꼭질이 간신히 끝이 난 날.

그날도 형제는 어린 날처럼 손을 꼭 잡고 같은 곳으로 돌아갔다.

이제는 영원히 헤어지지 않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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