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고 X
한유현에게 있어 첫 파티는, 빵집에 있는 것 중 가장 작은 사이즈의 케이크에 5개의 초를 꽂은 순간 시작되었다.
하얀 생크림 위에 올라앉은 딸기를 피해 색색의 얇은 초들을 꽂아 넣은 형이 촛불에 불을 붙인 후에 맞은편에 앉은 자신을 바라보며 지었던 웃음. ‘생일 축하 합니다.’로 시작한 노래가 ‘사랑하는 유현이’로 치달았을 때 또륵 초를 타고 흘러내리던 노란색 촛농. 심지를 태우며 흔들리던 작은 불꽃을 ‘얼른 불어.’라고 말하는 형의 재촉에 못 이겨 후, 불어 꺼버리자마자 피어난 가느다란 연기.
어차피 끄라고 할 것이면서 왜 촛불에 불을 붙였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유현을 유진은 생일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꼭 끌어안아 주었다. 태어나 주어서, 내 동생이 되어 주어서 고맙다는 말을 귓가에 속삭여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유현은 그날, 파티가 무엇인지 배웠다.
특별한 날을 기억하기 위해 파티를 하는 거라고. 유현이 생일은 유현이가 형과 만날 수 있었던 아주 특별한 날이니까, 그걸 오래 기억하려고 이렇게 생일 파티를 하는 거라고.
유진은 ‘파티’가 뭐냐고 묻는 작은 유현을 품에 꼭 안은 채로 천천히 설명을 해주었다.
그렇기에 유현은 파티를 싫어하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서 특별한 날은 유진과 함께하는 시간들 뿐이었다. 한유진과 관계되지 않은 날들에 특별함이 있을리 없었다. 그러니 특별한 날을 기억하기 위해 연다는 파티는, 오로지 형과 관계된 날 만을 의미했다.
해연의 연말 파티나 억지로 가서 얼굴을 비쳐야하는 자리들을 한유현은 파티라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후, 오래도록 유현에게 있어 파티는 오로지 일 년에 두 번, 자신의 생일과 형의 생일에만 이루어졌다.
그러던 유현에게 세 번째 파티가 생겼다. 10월 26일, 두 사람의 결혼을 기념하는 날이었다.
*
“아, 유현아. 잠깐만 여기 한 번만 다시 보자.”
신중하게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던 유진의 요청에 유현은 말없이 마우스를 움직였다. 그러자 두 사람이 아까부터 계속해서 보고 있던 영상이 다시 조금 뒤쪽으로 돌아갔다. 연신 원, 투, 쓰리, 입으로 되뇌며 경쾌하게 박자를 맞추는 영상 속 여자가 다시 한번 파트너의 손을 잡고 빙글 자리에서 돌았다.
여자의 움직임에 따라 여자가 입고 있던 낙낙한 치마의 주름이 쥘부채가 열릴 때처럼 좌악 펼쳐지면서 둥글게 부풀었다. 그 장면을 카메라가 위에서 담아낸 걸 처음 보았을 때, 유진은 그 치마의 모양이 마치 아침에 활짝 피어나는 나팔꽃과 닮았다 생각하기도 했다.
그 뒤로도 영상 속에서는 전체적으로 무척이나 아름다운 동작들이 물 흐르듯 펼쳐졌다. 손을 맞잡은 남자와 여자가 선율에 맞춰 움직이는 장면 하나하나가 우아했다. 영상이 끝났을 때는 절로 박수가 치고 싶어질 만큼.
그리고 아마, 유진은 지금 이들이 제 눈앞에서 이렇게 멋진 왈츠를 선보인 것이라면 기꺼이 박수를 칠 것이라 생각했다. 앞으로 자신이 이 춤에 도전해야 한다는 사실만 아니라면, 정말로 진심을 다해 박수를 쳐 주었을 것이다.
“역시 몇 번을 보긴 했지만, 봐서는 잘 모르겠다.”
“괜찮아. 동작은 내가 대충 외웠으니까.”
“그걸 다?!”
대답은 가벼운 끄덕임으로 돌아왔다. 그러자마자 순식간에 유진의 얼굴에 흐릿하게 드리워졌던 걱정이 사라지고 웃음기가 조롱조롱 걸린 입술이 유려한 곡선을 만들어냈다. 걱정이 사라진 얼굴에 그제야 기대감이 어른거렸다.
“그럼 한 번 해볼까?”
앉아있던 식탁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는 유진을 따라 옆에 있던 유현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미리 소파를 치워놓아 걸리는 것 하나 없이 넓기만 한 거실로 향했다. 바라다본 그곳이, 오늘 두 사람이 설 무대였다. 관객이라고는 거실로 비쳐드는 은은한 햇빛과 틀어 둔 음악뿐이었지만. 그렇기에 유진은 더욱 망설임 없이 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다.
거실 한복판에 유현과 마주보고 선 유진은 이미 몇 번이나 영상에서 보아 기억이 선명한 동작 그대로 유현과 손을 맞잡았다. 그러자 유현이 그 손을 지그시 감싸 잡았다가 유진의 왼손을 자신의 입가로 끌어 당겼다. 그리고는 왼손 약지를 감싼 은색의 둥근 링에 가벼이 입을 맞췄다.
“이런 부탁에 어울려줘서 고마워, 형.”
“…뭘 그런 말을 하고 그러냐.”
살짝 불긋한 홍조가 올라온 얼굴이 말하는 감정은 쑥스러움이었다. 결코 싫거나 화가 난 것은 아니었기에, 유진은 자신이 이런 말을 들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날 유현이 말한 ‘부탁’은, 이제는 유진에게 있어서도 꼭 이루고 싶은 바람 중의 하나가 되었기에.
이윽고, 몇 번이나 들었던 음악이 귓가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유현이 자연스럽게 맞잡은 유진의 손을 이끌며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유진도 지난 며칠 동안 반복해서 보았던 영상을 떠올리며 유현의 리드를 따라 어설픈 스텝을 밟아 나갔다. 분명 어설프지만, 그럼에도 누구도 보는 사람이 없는 단둘만이 남은 공간이기에 거리낄 것도 없었다.
유진은 생각보다 제법 즐거운 기분을 만끽하며 제 앞에 선 이를 바라보았다. 그러자마자 시선 끝에 그려지는 진한 미소에 유현 또한 지금 꽤 즐거워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처음, 이 제안을 들었을 때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충족감이 유진의 마음을 꽉 채워 괜히 맞닿은 손바닥이 간지러워졌다.
‘형, 결혼기념일도 특별히 기억해야할 만한 날이지?’
유현이 그 말을 꺼냈을 때만 해도, 설마 일이 이리될 줄은 몰랐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당연히 긍정할 수밖에 없는 대답이었기에 유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유현이 성스러워 눈이 멀 것만 같은(물론 한유현의 국보급 얼굴을 앞으로도 보기 위해 절대 실현되어서는 안 될 테지만, 기분만은 그러한) 미소를 그려내며 말했다.
‘그럼 그날은 둘이서만 파티 하자.’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단 둘이서. 그 어린 시절, 단둘이서만 축하를 나누어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된 것 같았던 그때처럼.
절로 떠오르는 그 시절의 기억이란 것은 마치 마음의 손난로 같아서, 꺼내어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물큰하게 녹아 절로 굳었던 입가가 허물어졌다.
파티장을 가득 채운 사람들도, 테이블 마다 세팅 된 훌륭한 음식도, 잔에 담겨 예쁜 빛깔을 선보이는 음료도, 최근의 두 사람이 겪어내야 했던 화려한 ‘파티’에 있었던 그 어떤 것도 없었지만. 그 어떤 파티보다 행복으로 가득 찬 기억이 가진 힘은 대단했다.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순식간에 그때의 그 행복이 잔잔히 밀려들어 마음을 가득 채웠다.
하지만 그 뒤로 유현이 제안한 것은 유진에게도 뜻밖의 것이었다.
‘그리고 그때, 형의 처음 한 가지를 나한테 줄 수 없을까?’
형이 내게 처음, 파티를 알려준 것처럼. 행복을 심어주고, 사랑을 알려준 것처럼. 유진이 유현의 ‘처음’을 온통 가져가버린 것처럼. 자신 또한 형의 처음을 좀 더 가지고 싶다고.
저보다 먼저 태어난 형의 처음을 그 정도로 많이 가지지는 못했기에, 유현은 곧 다가오는 결혼기념일을 앞에 두고 그런 생각을 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결혼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그날에. 아직 남아있는 형의 처음을 가질 수 있다면 어떨까 하는. 그런, 욕심이 문득 떠올랐다.
그런 생각으로 선택한 것이 왈츠였다. 아직까지도 형이 경험하지 못했던 무언가면서 동시에 단 둘이서 함께 할 수 있는 것이었으니. 그래서 유현은 형의 첫 왈츠 상대가 되고 싶었다. 이제 이 춤을 기억하거나 보게 될 일이 생기면, 형은 자연히 오늘의 경험을 떠올릴 것이다. 처음이라는 것에는 그러한 마법이 깃드는 법이었다.
“생각보다 재미있네.”
“난 형이랑 하는 거면 뭐든 좋아.”
당연히 프로처럼 완벽하지 않았다. 강의 동영상을 여러 번 보았음에도 스텝은 어설펐고, 유진은 유현의 발등을 몇 번이나 밟아버렸다. 음악과 어긋나는 타이밍으로 움직이기도 했고, 거리감을 유지하지 못해 유진이 움직이다가 유현의 품에 얼굴을 쿡 박아버리기도 여러 번이었다.
유현은 제법 그럴 듯하게 동작의 순서를 흉내 내긴 했지만, 노래보다는 형에게 집중하여 움직임을 맞추느라 박자를 놓치거나 기억해둔 동작을 못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어설픔이 웃음이 되고 눈치 볼 필요 없는 실수는 즐거움을 불러왔다
제 어설픔에 참지 못하고 터지는 웃음소리가 음악 사이사이 깃들어, 환한 햇살만이 스포트라이트처럼 들이치는 거실을 장식했다. 음악이 끝나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슬픔이나 걱정은 없었다. 빛나는 카펫처럼 깔린 가을 햇살 위의 두 사람을 감싸는 모든 감정이 오롯이 따스했다.
“내년에는 뭘 해볼까?”
그러게, 형. 뭐가 좋을까. 유현은 기대감이 서린 형의 까만 눈동자를 바라보다가 살풋 웃었다. 이제 자연스레 내년을 약속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가슴에 터질 듯이 만족감을 불어 넣었다.
앞으로도 유현과 유진이 처음으로 함께할 만한 것들은 수도 없이 많았다. 앞으로 그들이 매년 맞이하게 될 결혼기념일의 숫자 또한 그러했다.
유현은 끝나가는 음악에 맞춰 서서히 움직임을 멈추며 마주 선 형을 바라다보았다. 조금 숨이 차긴 하는지 살짝 벌어져 숨을 밀어내는 입술이 보였다.
유현은 유진의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허리를 기울여 형의 얼굴 앞으로 다가갔다. 이미 맛을 알고 있는 저 입술을 잔뜩 빨아 통통하게 부풀어 오르게 한 뒤에 형의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해봐도 늦지 않을 것이다.
올해 단 둘만의 파티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내년의 일을 생각해볼 시간은 충분히 남아있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유현은 망설이지 않고, 형에게 다가갔다. 아직, 둘만의 결혼기념일은 끝나지 않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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