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처음에는 열어볼 생각이 없었다. 우연히 주운 남의 핸드폰의 사진첩 따위. 아마 주운 핸드폰에 아기자기한 그림이 그려진 폰케이스가 끼워져 있다거나, 화려한 장식용 악세사리가 달려있었다면 좀 더 호기심이 생겼을지도 모르지만 안타깝게도 사내가 손에 쥐고 있는 핸드폰은 별다른 장식이 없는 단색 케이스가 끼워진 투박하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그래도 주인은 찾아줘야겠다는 생각에 핸드폰 화면에 반짝 불을 밝혔던 게 화근이었을지도 모른다. 요즘 누구나 다 해둔다는 홈화면 잠금장치도 해두지 않았는지, 핸드폰은 불이 켜짐과 동시에 스친 손가락에 반응해서 메인 화면을 활짝 열어보였다.
“뭐야.”
조심성 없는 사람이네. 아니면 게으른 거든지.
그런데 누가 알았으랴, 겉만 보았을 때는 아무런 흥미도 동하게 하지 못하던 그 핸드폰이 안쪽이 열리는 순간 세상에 다시없을 진귀한 볼거리가 될 줄이야.
아마 핸드폰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부터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 잠근 화면이 사라지자 그곳을 차지한 것은 두 사람의 사진이었다. 무척이나 대조적인 두 남자의 사진. 선이 가늘어 보이는 왼쪽의 남자는 보일 듯 말 듯 알아보기 힘든 연한 표정을 띄우고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희고 둥근 이마를 덮은 하늘색 머리카락과 아래로 자리 잡은 같은 색 눈동자. 아마 이런 옅은 색채가 사내의 인상을 더욱 흐리게 만드는 게 아닐까. 아니면,
“어?”
그 사내의 옆쪽에 찍힌 사람의 진한 인상이 사내의 인상을 더욱 흐리게 만드는 것일지도. 오른쪽의 남자는 구릿빛으로 잘 그을린 피부와 검푸른 눈동자. 그리고 그와 비슷한 짧은 머리카락을 하고 왼쪽의 남자와 마찬가지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정반대의 인상인 두 사람이 같은 카메라를 보며 찍은 사진. 하지만 다른 것은 그들의 외모뿐만이 아니었다.
사내가 왼쪽 사내를 몰랐던 것과 달리 오른쪽 사내는 알고 있다는 사실도 달랐다. 정확히는 사내가 일방적으로 사진 속 남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을 뿐이라, ‘알고 있다’같은 친분이 있다는 말로 오인 받을 수도 있는 말을 쓰기는 애매한 관계기는 했지만 말이다.
“아오미네 다이키?”
알고 있기는 했지만, 풀 네임을 입 밖으로 꺼낸 적은 없었다. 그야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이름을 꺼내는 건 보통 ‘이번 시합에서도 아오미네가 선수가’ 라던가, ‘방금 아오미네의 그 슛 굉장했지?’같이 단편적인 수다를 떨 때밖에 없었으니. 현재 떠오르는 일본 대학 농구계의 샛별의 이름을 농구팬이자 같은 대학에 재학 중인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나름 팬이라고 자처할 수도 있는 존재이다 보니, 아오미네 선수에 대해서는 이것저것 주워들은 정보들이 있는 편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정말로 그의 왼쪽에 찍혀있는 수수께끼의 남자는 본 적이 없었다.
한쪽 볼이 맞닿을 정도로 가까이 붙어서 앞쪽에 있는 핸드폰 카메라를 바라보고 찍은 것 같으니 무척이나 친근한 사이일 텐데. 이런 선수가 농구팀에 있다는 건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같은 과 친구라거나. 하지만 보통 같은 성별의 친구와 이런 사진을 찍던가? 이건 마치……
애써 밀어 넣으려던 호기심과 의구심이 손가락을 움직이게 했다. 역시나. 메인 화면의 잠금도 걸어놓지 않았던 사람답게 사진첩에 잠금도 당연히 없었다. 사진첩을 나눠 깔끔하게 사진들을 분류해놓는 정성 따위는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역시나 딸랑 하나 있는 사진첩 안에는 온갖 사진들이 다급히 뛰느라 안에서 엉망으로 섞여버린 도시락 통 속 반찬들처럼 엉켜있었다.
검은색과 흰색이 섞인 털을 가진 작은 강아지의 사진. 언제 먹었는지 모를 두툼한 스테이크. 메인 화면에 있던 사내의 사진이 몇 장 더. 아마 자신이 사고 싶어서 찍어둔 것인가 싶은 신상 농구화들 사진. 그리고.
살짝, 손이 떨렸다. 작은 네모가 되어 순서대로 정렬이 되어있는 사진들의 홍수 속에서 그 사진을 발견한 순간이었다. 주저하다가 자신이 본 것을 확인받고 싶어서 사내는 결국 사진을 터치해서 크게 열어보았다. 꿀꺽, 급격하게 말라오는 목 안으로 긴장과 놀라움이 덩어리져 삼켜졌다.
그 남자였다. 핸드폰 배경화면에 존재하던 그 사람. 하지만 단정하게 빗어 내려 찰랑이던 하늘색 머리카락은 땀으로 인해 이마에 엉망으로 달라붙어 있었다. 보기 좋게 끝이 호선을 그리는 유순해 보이던 눈매 또한 고통인지 아니면 쾌락이지 알 수 없는 것으로 잔뜩 일그러져 꾹 감겨 있었다. 아마, 그래서 보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이런 사진을 찍혔다는 걸? 이걸로 확실해졌다. 이 핸드폰이 누구 것인지. 배경화면만 보고는 둘 중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이 사진으로 인해 지금 확실해졌다.
자신이 박히는 사진을 제 핸드폰 카메라로 찍을 수 있는 재주 좋은 놈은 세상에 없을 테니까.
사진은 붉게 물든 채 일그러진 얼굴 아래까지 고스란히 찍혀 있었다. 요즘 카메라들은 참 성능도 좋지. 희고 곧게 뻗은 목덜미 중간에 멍울진 붉은 자국이라던가. 자극당해 오똑 일어선 것으로 밖에 안 보이는 유두까지 사진에는 고스란히 드러났다.
슬쩍, 저도 모르게 오른쪽으로 사진을 밀자, 사진은 힘없이 옆으로 밀려내며 다음 사진을 드러냈다. 사실 그 사진도 앞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까보다 아래쪽을 찍은 것인지, 앵글이 바뀌어 있었다.
그 때문에 사진에 찍힌 남자가 옷을 하나도 입고 있지 않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마릇한 몸 중 그나마 살이 붙은 듯한 남자의 요요한 오른쪽 허벅지와 허리, 그리고 가슴팍까지 비뚜름한 각도로 담긴 사진은 아까보다 더욱 노골적이었다. 목에 있던 울긋불긋한 자국이 허벅지부터 허리까지 곳곳에 남아 시선을 끌었다. 엄청 흰 피부라고 배경 화면을 봤을 때도 생각하긴 했지만, 허벅지를 꽉 잡았던 손자국까지 남아있는걸 보면 남자의 피부는 희기만 한 게 아니라 자극에도 약한 모양이었다.
사내는 무언가가 목젖을 꾸욱 누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허벅지에 힘이 들어가고, 갑자기 다리를 달달 떨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엄지를 움직여 사진을 넘겨버렸다. 두려움과 호기심의 격렬한 싸움 끝에 결국 승리한 것은 호기심이었다.
아, 자신도 모르게 낮은 탄성이 터졌다. 무릎을 세우고 앞으로 엎드린 사내의 뒷모습이 화면 가득 담겨있었다. 엎드린 탓에 여전히 남자는 카메라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내가 알아채지 못하는 동안 카메라는 샅샅이 사내를 훑었다. 무릎을 세운 탓에 볼록 올라온 자그마한 엉덩이 한쪽이 거뭇하고 커다란 손에 꽉 잡혀있는 모습이라던가, 등 뒤의 견갑골이 볼록 튀어나와 얼마나 사내가 팔에 힘을 주고 있는지 알 수 있게 해주는 장면이라던가. 아니면 정체를 생각하고 싶지 않은 불투명한 액이 묻어 번들번들 빛나고 있는 허벅지 같은……
“그만.”
쾅!!! 하고 사내가 앉아있던 벤치를 거칠게 걷어차는 소리와 함께 울린 목소리였다. 내내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긴장감이 툭! 하고 기어이 끊어져 버렸다. 긴장감이 끊어지자 그것이 간신히 붙잡아 펼쳐져 있던 호기심이 도르륵 다시 말려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사내의 손에 들려있던 핸드폰도 순식간에 낚아채져서 원래 그 자리에 없었던 것 마냥 사라졌다.
멀리 농구코트에서 보던 공을 스틸하는 손길이 이러했을까. 상황이 이상하니 영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되는 걸까. 사내는 제 생각에 스스로 실소하며 간신히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그곳에는 예상대로 가로등을 등진 채 악몽처럼 흉흉한 표정을 하고 있는 아오미네 다이키가 서 있었다.
화났겠지. 화가 날 수밖에 없겠지. 인정하고 있지만 대체 이런 순간에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당신의 성생활을 엿봐서 죄송합니다? 택도 없는 소리다. 하지만 이내 사내는 제 앞의 아오미네 다이키가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이유로 화가 났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쾅!! 다시 한번 커다란 농구화가 거칠게 즈려 밟은 곳은 정확히 벤치에 앉아있던 사내의 무릎 사이였다. 조금만 더 다리를 올렸다면 사내의 고간을 정확히 눌렀을 그 자리. 그곳을 강하게 내리 밟은 아오미네는 여전히 사람을 죽일 것 같은 표정을 풀지 않은 채 간신히 입을 열었다. 얼마나 화를 눌러 참고 있는 건지 목소리가 눌리고 눌려 한 없이 낮아져 있었다.
“누굴 보고 좆을 세워.”
움찔, 순간 사내는 저도 모르게 시선을 제 바지 쪽으로 떨궜다. 몰랐다. 정말 하늘에 맹세코 사진에 팔려있느라 어느새 불룩하게 제 앞섬이 올라왔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이 남자를 보고 세웠다는 충격이 해일처럼 밀려들며 어느새 앞쪽의 사신 같은 존재에 대한 두려움도 삼켜버렸다. 내가? 내가 그랬다고? 사진첩 속 이름도 모르는 남자의 잔상 같은 것이 눈앞에 다시금 떠오르는 듯 해 사내는 턱에 힘을 주며 이를 악물었다.
“……죽여 버린다.”
물론 당연히, 자신의 표정이 욕망을 억누르는 듯한 느낌을 줄 것이라는 것도 몰랐다. 그저 본능이었고, 척수반사같은 행동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그 행동이 눈앞의 상대의 분노에 불을 지필 것이라는 것도 알지 못했다. 결국 다시 한번 벤치를 짓밟은 다리가 올라가려던 순간이었다.
“아오미네 군.”
“……아?”
“핸드폰은 찾았습니까?”
“어!! 찾았어!! 찾았어!!”
공원의 벤치 뒤쪽 산책로 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그 소리에 아오미네는 잠시 고민하는 듯 사내를 노려보다가 다리를 내리고 척척 걸음을 옮겼다. 원래대로라면 그 산책로로 가기 위해서는 한참 길을 돌아 걸어가야 했지만, 가운데 심어둔 키 낮은 나무들이 무색하게 아오미네는 정면으로 나무들을 뚫고 지나갔다. 벤치에 덩그러니 남은 사내는 이미 아오미네의 기억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제 남은 것은 늦은 밤 공원 벤치에서 자신의 성적 정체성에 대한 고민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사내 한명 뿐.
아직도 이걸 오픈해도 되나 고민하고 있습니다.
제 마음이 찝찝함을 이겨내지 못하면 언젠가 비공개로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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