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테츠 아빠!!!”
한 점의 구김살도 없는, 마치 누구의 발걸음도 닿지 않은 설원 같은 맑은 목소리에 쿠로코는 뒤를 돌아보았다. 사실 저를 부르는 소리일리가 없는 단어가 섞여 있었기에 그게 자신을 부르는 소리일거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사람들이 복작이는 대로변이니, 작은 아이가 인파에 떠밀려 멀어지는 아빠를 힘차게 부른 것이겠지. 그 아버지의 이름이 연인이 저를 부르는 애칭인 것은 그래, 그저 아주 작은 우연일 뿐이다.
그 해맑은 목소리의 주인공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져서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뒤돌아볼 정도의 우연.
하지만 쿠로코는 자신이 뒤를 돌아보기도 전에, 누군가가 자신의 윗옷 끝자락을 꽉 잡고 아래로 끌어당기는 느낌을 받았다. 그 힘은 약했지만, 꽤나 고집스러웠다. 결국 쿠로코는 제 옷자락은 당기는 범인의 얼굴을 찾아 몸을 돌렸다.
“테츠…아…빠?”
그리고 발견해버렸다. 저를 빤히 올려다보며 뭔가 이상하다는 표정을 하고 있는 작은 아이를. 그 입에서 나오는 호칭을 듣는 순간 쿠로코는 그 아이가 아까 전 제 호기심에 불을 당긴 목소리의 주인공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왜인지는 모르지만 뭔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이의 얼굴에서 누군가를 찾아냈다.
까무잡잡하게 타버린 검은 피부와 짙은 남색 기운이 감도는 짧은 머리카락. 살짝 치켜 올라간 예리한 눈매. 하지만 저를 바라보는 그 눈동자 색은 오늘 아침에도 거울 속에서 보았던 자신의 것과 닮아서, 쿠로코가 지금 그리고 있는 한 사람과 아이를 겹쳐 놓았을 때 틀린 그림 찾기의 정답마냥 눈에 띄었다.
하지만, 닮았지만…… 그래, 인정하기는 힘들지만 이 아이가 자신과 오늘 만나기로한 제 연인을 꼭 닮은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역시 테츠 아빠 맞지?”
제가 저런 호칭으로 불려야할 이유는 없을 텐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상했다. 자신은 평범한 대학교 2학년 남학생이었다. 그래, 남학생. 만약 자신이 아빠라는 호칭으로 아이에게 불릴 가능성이 생기려면, 적어도 지금보다 훨씬 어렸을 때 여학생과 소위 말하는 ‘사고’를 쳤었어야 했다.
하지만 쿠로코는 중학교 1학년이라는 어린 나이에 지금도 옆구리에 끼고 있는 ‘연인’을 만난 이후로 자신의 성적 취향을 확실히 자각해 버렸다. 자신은 동성과 혀를 섞어 키스를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자신은 동성의 벗은 몸에 성욕을 느끼고, 그 몸을 끌어안고 섹스를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쿠로코에게 있어 여성과 성욕은 같은 선상에 놓일 수 없는 무언가 였다. 그런 자신이 어떻게 사고를 치고, 어떻게 자식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아니, 애초에 자신이 사고를 쳤다는 것도 이상했다. 자신이 혹시라도, 정말 만에 하나 기억에는 없지만 여학생과 그렇고 그런 관계를 가져서 사고를 쳤다고 한다면. 대체 아이가 왜 그를 닮는단 말인가?
“테츠 아빠 왜 그래? 내 얼굴에 뭐 묻었어?”
역시 닮았다. 열 번을 보고 백번을 봐도 닮았다. 자신을 아빠라고 부르고 있는 이제 막 유치원에 들어간 것 정도로 보이는 작은 아이는 자신의 연인, 그러니까.
“테츠? 거기서 뭐해?”
아오미네 다이키를 너무나 닮아 있었다.
저 멀리 아이의 등 뒤에서 다가오고 있는 아오미네는 인파 속에서도 쿠로코의 시선을 한 눈에 사로잡았다. 다른 사람들보다 머리 하나, 혹은 두 개까지도 더 큰 사람이니 눈에 안 띌 수가 없었다. 그렇게 아이와 아오미네를 한 시야 속에 담은 채로 보니 더더욱 닮아 있었다. 이렇게 닮은 정도면 자신이 사고를 쳤다기 보다 오히려…
“다이키 아빠!!! 역시 아빠도 같이 있었네!!!”
“뭐? 아빠? 테츠? 이게 갑자기 무슨? 뭐?!!”
저 사람이 사고를 친 게 아닐는지. 쿠로코는 서늘해진 눈매로 허리춤에 달려들어 매달린 아이를 보고 당황하고 있는 아오미네를 바라보았다. 지금까지는 취미의 일환이라고 생각해서 넘겼던 그의 방 침대 밑에 밀어 넣어져 있는 그렇고 그런 잡지들이 급격하게 머릿속을 휘저었다. 역시, 그렇게 가슴 타령을 하더니 어디 가서 무슨 사고를 치고 온 건가? 그런 건가?! 대체 몇 살 때 사고를 쳐야 애가 지금 저 나이가 되지?
“아오미네 군 솔직히 말하세요.”
“뭘?!!”
“몇 살 때입니까. 아이 엄마는 대체 누구고요?”
“갑자기 무슨 소리야!!”
“거기 아오미네군 허리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애를 낳은 엄마가 누구냐고 묻는 겁니다.”
이미 마음 속 재판관이 땅땅 망치를 내려치면 판결까지 내려버렸다. 이 아이의 아버지는 저 사람이며, 지금보다 더 어린 나이에 사고를 친 게 분명합니다, 라고.
아오미네 또한 알아차렸다. 자신을 보는 저 벌레를 바라보는 것보다 더 경멸스러운 눈동자. 원래도 무표정한 편이지만, 상대를 향한 불쾌함을 가득 담고 있는 굳은 입가.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애인이 단단히 화가 났다. 그것도 무지무지하게.
그리고 아마 그 화의 원인이 지금 제 허리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이 아이일 것이라는 것도 눈치 챘다. 하지만 아오미네는 제 허리에 매달린 아이를 향해 시선을 내렸다가 저도 모르게 ‘어?’라고 입을 벌리며 멍청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 얼굴은 아오미네에게서 그런 반응을 끌어내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친근하게 아오미네의 허리에 매달려 있던 아이는 자신을 보고 당황하는 아오미네의 얼굴에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그리고 저의 뒤에서 서늘한 목소리로 알 수 없는 질문을 하는 쿠로코를 향해서도 비슷한 표정을 해보였다.
“테츠 아빠가 낳았잖아.”
“……네?”
“테츠 아빠가 오메가라서 날 낳았잖아. 사실 나도 사야쨩처럼 오메가 아빠는 엄마라고 부르고 싶은데…… 테츠 아빠가 엄마라고 부르는 거 별로 안 좋아하잖아.”
그러니까 테츠 아빠야.
방긋, 아이가 웃었다. 그 천진한 웃음을 본다면 그 누구도 아이도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존재라는 생각을 못하리라. 하지만 지금만큼은 쿠로코는 아이의 미소를 부정하고 싶었다. 도저히 제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늘어놓으며 제 배를 중지로 가리키고 있는 저 아이를. 저 아이의 입에서 쏟아지는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을 전부 부정하고 싶었다.
“그렇지 다이키 아빠?”
제가 말한 정답을 확인받고 싶다는 듯. 아이는 이번에는 아오미네의 바지자락을 잡고 가볍게 흔들었다. 그 모습이 퍽 뿌듯해 보여서 아오미네는 저도 모르게 손을 내려 아이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보았다.
아이는 환상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이 아오미네의 커다란 손을 머리 위에 얹고 배시시 웃음 지었다. 그 모습에 아오미네는 홀린 듯 따라 웃어 버렸다. 아주 닮은, 마치 데칼코마니로 찍어낸 것 같은 개구진 웃음이 여름의 햇살을 사이에 두고 쏟아졌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얼핏 보면 귀여운 그 모습을 보며 ‘형제인가?’ 닮았네. ‘가족이겠지.’같은 말을 하고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쿠로코만은 끝내 그 행인들과 같은 속편한 소리를 할 수 없었다.
아이가 말하는 이야기대로라면, 아이가 말하는 그 가족 안에는 자신이 그것도 매우 납득하기 힘든 포지션으로 끼어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대체…이게 무슨 일입니까.”
난데없이 툭 떨어진 아이를 앞에 두고 절망적인 심정으로 흘러나온 소리에 화답하듯 가방에서 뿅 튀어나온 이호가 멍!하고 짖는 소리를 냈다. 그러자 아이가 “2호!!!”라고 반가이 부르며 다시 쿠로코에게로 달려왔다.
천사인가. 아니면 악마인가.
갑작스럽게 자신들 앞에 떨어진 아이는 2호에 대해서도 아주 잘 알고 있는지 가방에서 2호를 꺼내 익숙하게 품에 안았다. 그 모습을 보는 쿠로코와 아오미네 두 사람만이 갑자기 생겨난 새로운 가족을 당황이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오메가버스 세계관에서 그냥 평범한 세계관의 청흑 앞으로 뚝 떨어진 2세 보고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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