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화 나오기 전에 날조하느라 퇴고없음 주의ㅠㅠ
*158화 후 날조
여름이었다.
아직 작은 키 때문에 더위가 더 가깝게 느껴지는 걸까. 유진은 후끈하게 달아오른 아스팔트에서부터 올라오는 열기에 이마에서 주륵 흘러내린 땀을 훔쳤다.
주먹을 꼭 쥐고 있던 야무진 손으로 이마를 슥슥 비벼 물기를 걷어냈지만, 그것도 잠시. 이마에서는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다시 지워졌던 길이 생겨나 유진의 짜증을 톡톡 건드렸다.
아마 그랬기 때문일 터였다.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넘겼던 모든 것들이 제 불쾌함을 쿡쿡 찌르는 것처럼 느껴진 것은.
고막이 터져나갈 것 같은 매미의 울음, 바로 옆 도로변에서부터 울리는 클락션의 소음, 수박을 잔뜩 쌓아 둔 트럭의 확성기에서 퍼지는 높낮이가 느껴지지 않는 어색한 목소리. 그리고, 아까 전 교문을 벗어나기 전에 들었던 반 친구들의 놀림 가득한 목소리까지.
결국 유진은 슬그머니 제 오른손의 힘을 풀었다. 여직 제 것보다 아주 작은 손을 꽉 쥐고 있던 탓에 틈이 없던 손과 손 사이에는 미지근한 바람만 닿아도 꽤나 시원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잠깐 벌어졌던 틈은 금세 메워졌다. 유진이 손에 힘을 푼 것과는 다르게 손 안에 잡혀 있던 작은 손이 황급히 유진의 손을 잡아 쥐며 손바닥과 손바닥을 다시 밀착시킨 탓이었다. 땀이 고여 척척한 손바닥이 다시금 찰싹 맞닿았다. 유진은 아주 조금, 그 감촉이 껄끄러워졌다.
“유현아, 손 놓고 가자.”
“왜?”
걸음을 멈춘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손을 잡고 나란히 걷던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손을 놓지도 않은 채 걸음을 멈춰버렸으니까.
유진의 힘으로 유현의 손을 뿌리치고 계속 걸음을 옮기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유진은 고집스럽게 땅바닥에 발을 붙이고 선 채, 저를 바라보는 동생의 손을 뿌리치지 못했다.
가로수로부터 길게 뻗어 나온 검은 나무 그늘 아래 쏙 들어간 형제는 각자 얼굴 위에 그림자를 짊어지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유진만을 응시하며 해답을 요구하는 유현의 검은 시선이 제법 매서웠다.
“그야……땀이 이렇게 많이 나기도 하고……”
교문을 막 지날 무렵, 공원 축구장에 가서 축구를 하겠다고 뛰어가던 같은 반 친구들은 유진에게도 함께 가지 않겠냐고 물어왔었다. 하지만 유진은 제 한쪽 손을 꼭 잡은 동생의 손을 조금 더 힘주어 잡으며 도리질을 쳤다. 동생 데려다 줘야 돼. 그러면서 자신에게는 너무 당연한 이야기를 건넸더랬다.
하지만 그중 한 아이가 불쑥 뱉은 말이 문제였다. 아직도 동생이랑 손잡고 다니냐? 그 시선이 그때는 왜 그렇게 부끄러웠을까.
마치 무척 이상한 것을 본다는 듯 휘둥그레 뜬 녀석의 눈동자가 싫어 유진은 맞잡은 손을 슬그머니 제 뒤로 숨겼다. 하지만 그런다고 이미 모두가 봐버린 사실이 달라질리 없었다.
유진이 손을 숨기며 시선을 피하려 든 순간, 아이는 제가 마치 승자라도 된 것 마냥 의기양양한 웃음을 지으며 마지막 말을 남겼다. 이상해. 툭 던져진 자기의 기준으로만 재단된 평가가 날카롭게 유진을 할퀴었다.
그나마 다행이랄 것이라면 아이들이 그 이상의 말은 하지 않고, 서둘러 저희들이 가려던 공원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공을 툭툭 발로 차면서 앞을 향해 뛰어가는 아이들 무리의 관심에 더 이상 유진은 남아있지 않았다. 악의보다 더 질이 나쁜 솔직함이 남긴 상처를 감당해야 하는 것은 고스란히 유진의 몫이 되었다.
“아까 전에 다른 애들이 하는 소리도 들었잖아…… 동생이랑 손잡고 다니는 건 이상하다고.”
우물쭈물, 잠시 고민하다 뱉어낸 말은 분명 유현을 설득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겨우 초등학교 1학년 밖에 안 된 유현이지만, 그래도 이상하다라는 말의 뜻을 모르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초등학교 6학년 아이가 주변에서 ‘평범하지 않은 것’이라고 정의된 이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내놓은 해결책.
하지만 동생은 그런 유진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히려 꾸욱 더욱 강한 힘으로 유진의 손을 잡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싫어.”
“유현아?”
“난 형 손 놓기 싫어.”
여름이었다. 돌아온 대답에 다시 한번 계절을 곱씹어 생각해보았지만, 지금은 여름이었다.
밀착된 살갗과 살갗 사이에 땀이 배어나는 계절. 얇아진 옷차림으로도 흐르는 땀을 막는 건 역부족이라 다정한 연인이라도 내내 손을 잡고 다니는 것이 꽤나 불쾌한 행동이 될 수 있는 하루.
하지만 제 동생은 유진이 속으로 고심하다 꺼내놓은 대답들도, 지금 자신의 머리 꼭대기 위해서 작열하는 태양도 깡그리 무시했다. 그리고는 혹여 이대로 형이 제 손을 놓을까 허둥지둥 그 작은 손을 움직여 유진의 손가락과 손가락 사이에 제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사선으로 엇갈린 채 손바닥과 손바닥이 마주 잡혀 있던 손이, 손가락끼리 단단히 얽혀들었다. 마치 하나의 넝쿨이 된 듯 아까보다 더욱 밀착되어 얽힌 작은 손이 제법 힘을 주어 유진의 손을 압박해왔다.
“형도 이상한 것 같아? 내 손잡고 가는 거 싫어?”
저는 놓을 생각이 없다고. 이렇게 고집스럽게 낑낑 거리며 먼저 손을 얽어 잡았으면서. 그러면서도 유독 까만 유현의 눈동자에는 불안이 반들반들 거렸다. 마치 주인에게 버림받은 강아지처럼 보이는 댕그란 눈동자. 드리워진 나무의 검은 그림자 안에서도 맑게 빛을 발하는 그것이 어찌나 어여쁜지.
유진은 제 동생이 감정 표현에 꽤나 무감한 편이라는 것을 알았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 대한 의사 표현은 명확하게 하지만, 엄청나게 기뻐하며 들뜬 표정을 해 보인다거나 슬퍼서 엉엉 운다거나 하면서 남들 앞에서 제 감정을 크게 드러내는 일은 좀처럼 없었다.
하지만 세상에 단 한명, 제 앞에서만은 차게 식은 눈동자에 감정이 감돌고 표정이 만들어졌다.
유현의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유진은 괜히 발끝부터 간질간질하고 아랫배가 꾹 조여지는 느낌이 들었지만, 아직 어린 그의 지식으로는 그런 제 감각들을 정의하지 못했다. 그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것을 한 입 베어 물었을 때처럼 만족스러운 포만감으로 꽉 찬 심장이 콩, 콩, 뛰는 것을 느끼며 제 동생의 어리광을 받아주었을 뿐.
“아냐, 내가 왜 유현이 손잡고 가는 걸 싫어해.”
그냥…… 유현이도 땀나니까 싫을까봐 그랬지.
주변의 말에 흔들린 거였으면서. 손바닥에 고인 땀 같은 것은 저도 원래 신경조차 쓰지 않았으면서. 유진은 괜한 변명을 내뱉으며 제 손에 얽힌 말랑말랑한 작은 손을 꾹 쥐었다.
6학년인 제 수업이 끝날 때까지 혼자 빈 교실에 앉아 책을 읽고 있던 동생이 기다리는 교실로 헐레벌떡 뛰어오는 동안 이미 손바닥에는 땀이 흥건해졌다. 하지만 유진은 교실문을 열고 유현의 손을 잡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었다.
뛰어와서 숨이 턱 끝까지 치받치는 와중에도 유현아! 라고 크게 이름을 불렀다. 제 이름을 부르면 저를 보고 사르르 웃음이 녹아드는 눈매가 너무 어여뻐서, 절로 그것을 놓칠 새라 손을 꼭 잡게 되었다.
이런 동생의 손을 잡는 걸 어떻게 싫어하겠는가.
유진은 제가 했던 괜한 소리를 스스로도 잊으려 조금 더 손에 힘을 주었다. 단단히 맞물린 손바닥과 손가락이 이제 다시는 떨어지지 않을 것처럼 붙어 있었다. 유진은 그제야 저를 보고 다시 웃어주는 동생과 함께 나무 그늘을 벗어났다. 검은 그림자 밖으로 나온 작은 아이들의 발걸음이 당차기만 했다.
그런, 시간이 있었다.
그리고,
“내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말라고 분명 말했을 텐데.”
그런 동생을 손을 너무 오래 잡아주지 못했던 시간이 있었다.
유진은 앞에 선 동생을 바라보며 제가 유현이의 손을 잡아주지 못했던 아주 오래 묵었지만, 아직 낡지 않은 순간들을 떠올렸다.
이제는 알고 있다. 제 손을 잡지 않고 밀어내던 순간들에 유현의 마음이 어떠했는지.
그렇기에 유진은 이번에는 어렵지 않게 유현의 눈동자를 마주보며 그의 진심을 찾아낼 수 있었다. 어릴 때와는 달리, 그리고 제가 알고 있던 다른 미래와도 달리 붉은 기가 조금 돌게 된 검은 눈동자. 그 속에 숨어 있는 제 동생의 진심이 고스란히 전해져와 유진에게 발을 내딛을 힘이 되어주었다.
조금씩 틈이 좁혀지는 동안에도 유현은 도망가거나 뒷걸음질 치지 않았다. 마치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서 제 날 선 말에도 아랑곳 않는 유진을 바라볼 뿐이었다.
이윽고 완전히 좁혀진 거리에 마주 선 유진은 손을 뻗어 칼을 쥐고 있지 않은 유현의 손을 앞으로 잡아끌었다. 그리고는 단단히 맞잡았다.
이내 손바닥이 마주 닿는 것으로는 부족하다는 듯 손가락과 손가락까지 얽히며 두 손 사이의 아주 작은 틈새까지 가득 채웠다. 강하게 얽어 빠져나갈 수 없는 매듭을 짓듯이 손을 얽었다. 마치, 다시는 놓지 않겠다는 듯 하나로 맞물린 손으로 유현의 시선이 향했다.
아직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얼떨떨해 보이는 눈동자가 손에서 떨어져 제 얼굴을 바라봐오자 유진은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 웃어보였다.
“유현아.”
“…….”
“이제는 형 손잡는 거 싫으냐?”
장난치듯, 놀리는 듯. 제게 방금 전 쏟아진 말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 그저 맑기만 한 그 얼굴에 웃음이 걸쳐졌다. 이 상황을 쑥스러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 얼핏 떠오른 과거를 즐겁게 회상하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웃음기 어린 얼굴이 주장하는 바는 확고했다.
다시는 놓을 생각 없어. 이제 다시는.
후회는 한번으로 족하다. 잃는 것도 한 번으로 족하다. 다시는 반복하고 싶지 않은 심장의 고통을 곱씹는 것도 이제 원하지 않았다. 시원한 도마뱀의 등 위에서 이미 결심이 끝난 일이었다. 혹시라도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게 하지 않겠노라고.
그렇기에 유진은 웃으며 손에 힘을 주었다. S급의 힘이라면 제 손 정도는 손쉽게 털어낼 수 있을 테지만. 좀처럼 제 손아귀에서 빠져나가지 않는 손의 존재감을 느끼며 유진은 조금 더 짙게 웃었다.
“싫어도 이제는 네 손 못 놔.”
그러니까 형 밀어낼 생각은 하지도 마라. 한유현.
그 여름의 우리가 그러했듯이. 앞으로는 절대로 놓지 않을 테니까.
푸른 안개 속에서도 더위가 출렁였다. 아니, 열기인지 유현이 흩뿌리는 화기인지는 확실치 않았다. 반장갑을 낀 손바닥에 절로 땀이 끈적하게 고이고, 붙어있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히는 계절. 하지만 그럼에도 너를 놓을 수 없는 시간, 계절은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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