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Text/내스급

[내스급/유현유진] 1억 2천 날조 낙서

by 자렌Jaren 2018. 12. 10.

*오늘 화 나오기 전에 날조하느라 퇴고없음 주의.

*122화 후 날조

 



경매장의 분위기는 한껏 무르익어 있었다. 처음에는 경매 물품이 스스로를 판매하는 이 기묘한 광경을 어이없는 시선으로 바라보던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무대에 올라선 저 사람의 가치가 어떤 것인지 말이다.

마수를 사육할 수 있다.

단순한 한 문장으로 정의되는 그의 능력이 이 세상에서 가지는 가치는 상상 이상이었다. 마수를 길러냄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결과가 엄청나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그의 능력은 대체제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현존하는 세계 유일의 마수 사육사. 그를 손에 넣는다는 건 앞으로의 마수 공급 시장을 독점할 수 있다는 뜻이나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한유진, 그는 이 변해버린 세계에서 먼 미래를 볼 줄 아는 사람일수록 더욱 그의 가치를 절실하게 깨닫게 만드는 존재였다.

미래를 볼 줄 아는 사람들일수록 판단이 빠르고, 주변의 분위기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법이다. 느리고 둔한 사람이라면 애초에 이 자리에 있을 수도 없었을 테지. 실제로 마이크를 쥐고 나타난 존재를 황당한 눈으로 바라보던 이들의 눈빛이 바뀐 것은 순식간이었다.

더군다나 이번 경매는 돈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경매도 아니었다. ‘아이템’. 경매 물품은 친절하게 자신을 낙찰할 수 있을지 없을지를 아이템을 보고 평가하겠다고 말했다. 그 자리에 모인 이들은 자신의 능력이 이 정도나 된다는 걸 과시할 수 있을 정도의 대단한 물건을 내밀어야 한다는 걸 순식간에 파악했다.

여기에 모였다는 것 자체가 이미 어딘가에서 한 가닥 하는 헌터라고 인정받은 셈이었지만, 아무래도 저 이상하리만치 기운이 넘쳐 보이는 경매 물품은 더 확실한 증거를 원하는 모양이었다.

하긴 헌터의 세계는 돈도 돈이지만, 능력이 최고의 가치로 평가되는 사회가 아니던가. 그걸 생각하면 지금 경매품의 선택은 언뜻 보기에 옳아 보이기도 했다적어도 능력 없는 사람 아래 있을 마음은 없다 이건가…… 호전적인 헌터들의 자존심을 제대로, 정말 제대로 긁어놓은 도발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이성적으로 이 사태를 관망할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생각했다. 한유진은, 마수사육 능력이 좋을 뿐 아니라 머리도 무척 뛰어난 것 같다고. 적어도 능력에 휘둘려 쉽사리 이용당해줄 만만한 타입은 아니라고.

그런 판단은 적절했고, 실제로 모인 이들의 진심을 이끌어 냈다.


, 저건……

저 사람 역시 미국의……

 

결국, 이 자리에서 두 번째 S급 아이템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까 전, 가장 먼저 최고가를 불러서 한유진 헌터를 낙찰해갈 권리를 얻었던 러시아의 헌터는 자신 있게 꺼냈던 S급 아이템을 고스란히 제 품안에 집어넣어야했다. 비록 장비류 아이템이기는 했으나 그래도 S. 어디 가서 뒤쳐질만한 아이템은 결코 아니었음에도 한유진은 거부권을 행사했다. 러시아는 너무 추워서 싫다나 뭐라나.

한국인이 러시아보고 춥다고 할 자격이나 있냐고. 남미 출신의 누군가가 속삭이는 소리가 얼핏 들렸다.

그리고 다음으로 낙찰권을 얻은 것이 바로 지금 아이템을 꺼내고 있는 저 사람이었다. 미국 출신의 화려한 금발 머리가 인상적인 남자. 이곳에 모인 이들이 정체를 짐작할 만한 거물.

그런 사람답게 꺼내놓은 아이템은 주위의 탄성을 불러 일으켰다. S급 무기. 한국에는 얼마 전에 예림이가 낙찰 받은 것이 16번째였을 만큼 희귀성 있는 아이템. 세계적으로도 그 수가 그리 많지 않기에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의 위치를 짐작케 하는 물건이 등장했으니, 자신도 모르게 탄성이 나올 수밖에.

실제로 무대 위의 한유진도 홀린 듯이 제 앞에 꺼내진 물건을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많은 사람들이 이제 이 경매가 끝날지도 모른다고 예감했다. 그는 던전이 발견된 뒤로도 세계 강대국의 위상을 잃지 않은 미국인이었고, 제 능력을 증명하기에 한점 부족함이 없는 아이템까지 꺼내보였다. 한유진이 마지막 거부권까지 써가며 이번 낙찰자를 거부할 이유는 없어 보였다.

다들 그렇다고 생각했다.

 

거부권?”

대체 무슨 생각이지?”

 

순식간에 홀 전체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분명 아이템으로 판단한다고 하기는 했지만, 중요한 것은 한유진에게 주어진 거부권은 두 개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적어도 한유진은 두 번째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했다고 그들은 확신했다. 그리고 동시에 기뻐했다.

이제 한유진에게 거부권은 없다. 그것은……

 

이제부터 부르는 게 값이라는 뜻이죠.”

 

무대 위의 청년이 웃었다. 마치 저를 가져보라는 듯, 자신이 있으면 도전해보라는 듯. 신체 능력도 형편없는 F급이 S급들을 향해 던진 도발.

하지만 그 도발에 그곳에 있는 누구도 불쾌하지 않았다. 어차피 제가 힘으로 찍어 누를 수 있는 것이 확실한 상대가 하는 도발은 도발로 느껴지기 힘들었다.

그가 제 손에 들어오기만 한다면, 저런 태도는 순식간에 교육시킬 수 있다. 인간을 순종적인 펫으로 만드는 방법을 평범함의 범주를 아득하게 벗어난 지 오래인 헌터들이 모를 리 없다. 그러니 일단은 손에 넣기만 하면 되는 손쉬운 상대. 그리고 드디어 그 상대를 손에 넣을 최적의 타이밍이 되었다. 헌터들이 사냥감을 향해 돈을 흩뿌리기 시작한 것은 순식간이었다.

가격은 아까 전과는 달리 더욱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지금의 한유진이라면 확실히 돈으로 찍어 누르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는 상태이니. 그야말로 지금 이 순간 최고가를 부르는 이가 한유진의 소유권을 가져갈 수 있는 상태. 그렇기에 제가 마련해온 금액보다 무리해서라도 금액을 높여 부르는 이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몸값에 오히려 소위 중개인이라는 인신매매범 조차 당황했지만, 오히려 한유진의 눈은 당당했다. 어찌 보면 왕좌에 올라앉아 아래쪽을 훑어보는 왕처럼 오만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실제로 이런 상황이 만들어진 것에 저도 모르게 실소를 터트리는 이들도 간혹 있었다대체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수많은 고위급 헌터들이 F급 아래 놀아나고 있는 광경이라니!

하지만 결국 그 소란은 올라갈 대로 올라간 금액이 거의 최고점을 찍기 전에는 마무리가 되지 않았다. 심지어 더는 올라갈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최고 금액이 동시에 두 사람의 입에서 나오면서 홀에는 싸늘한 긴장감까지 감돌았다.

 

, 공교롭게도 두 분이 동시에 같은 금액을 불러주셨네요.”

 

저 목소리에서 이제 즐거움마저 느껴진다면 착각일까?

애초에 무대에 처음 섰을 때부터 한유진에게서는 조금도 공포가 느껴지지 않았었다. 그것에 의아함을 느낀 헌터들도 당연히 있었다.

이곳에는 A급에서 S급까지 한 길드의 길드장을 차지할 수 있을만한 실력의 상위급 헌터들이 가득했다. 그런 곳에 홀로 뚝 떨어진 F급이 한 사람. 애초에 각성자보다 민감하지 않은 비각성자들도 이렇게까지 상위 헌터들이 모여 있다면 위압감을 느끼고 주춤거리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F급 헌터가 저렇게까지 태연하다고? 당연히 이상해 보일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상한 것이 이 경매에 참여하지 않을 이유가 되지는 않았다. 왜 그런 것인지, 그런 것은 그를 낙찰 받은 후에 알아보아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두 분 앞으로 나와서 아이템을 보여주시겠습니까?”

 

이제 드디어 이런 짓도 마지막인가? 지금까지 찬란한 S급 아이템 두 개가 거절당했다. 하지만 이제는 한유진에게도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두 사람이 내미는 아이템이 방금 전에 나왔다가 지나간 S급 아이템들보다 떨어지더라도 그는 이번에 제게 주어지 선택지 중에서 반드시 선택해야 했다.

제 주인을.

이윽고 한 사람이 인벤토리에서 아이템을 꺼내보였다. 경쟁자가 무엇을 내놓을지 몰라 아무거나 꺼내놓을 수 없었기에 이번에 꺼내진 아이템 또한 S급이었다.

아까 전, S급 무기보다는 못하지만 이런 자리에 내놓기에 부족하지도 않은 방어형 아이템. 오히려 F급인 한유진이 거둔다고 한다면 무기보다 차라리 이것이 나아보일 정도였다. 일단 저 조잘거리는 F급의 목숨을 조금이라도 더 유지하려면 공격보다는 방어가 더 우선이지 않겠는가.

그런 것까지 계산하며 아이템을 내놓은 상대는 제 선택에 꽤 만족하는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제 옆에선 경쟁자를 바라보았다. 이 정도면 상대가 어지간히 대단한 것을 내놓는다고 해도 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윽고 사내 옆에 서 있던 상대도 움직였다. 하지만 그는 인벤토리에서 아이템을 꺼내지 않았다. 오히려 제가 쓰고 있던 안경을 벗어 그대로 내밀며 무대 위의 상대에게 시선을 맞춰왔다.

처음에는 그 안경이 뭐 얼마나 대단한 아이템인가 싶어 안경으로 모두의 시선이 쏠린 건 당연했다. 하지만 안경에 몰렸던 사람들의 시선은 안경을 벗자마자 순식간에 바뀌어버린 그의 얼굴로 향했다.

, 하는 숨을 삼키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그 얼굴을 여기 있는 사람들이 모를 리가 없었다. 제가 낙찰 받고자 하는 경매품에 대한 신상명세를 받아보면서 자연히 함께 설명되어 있던 한 사람.

F급 형의 보호자, 한국의 태생 S급 헌터 중 한 명. 그리고 아마, 형이 납치된다면 가장 적극적으로 찾아다닐 요주의 인물. 정말이지, 그들이 받은 보고서에 적혀있던 그대로가 아닌가.

 

.”

 

무대 아래에 있는 한유현이 위를 향해 양 팔을 뻗는 것이 보였다. 이리로 오라고 부르는 명백한 손길. 제가 정체를 드러내는 순간 의미가 없어진 경매를 여기서 끝낼 작정인 듯 했다.

사실 그가 안경을 벗어버림으로 인해 모두의 앞에 정체를 밝힌 것은 이런 이유도 겸하는 것이었다. 방해하면 죽인다. 제 형을 향할 때만은 눈동자가 유순해졌지만, 그가 이 공간에 있는 이들을 향해 날리는 살기는 충분히 그들도 느낄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이제 무대 위의 사람이 움직였다. 더는 이곳에 남아있을 의미가 없다는 것처럼 저를 향해 뻗어진 손을 붙잡고 상대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한유현이 무대에서 뛰어내려 제 품에 날아든 몸을 단단히 붙잡아 안아든 것은 순식간이었다. 분명히 한유진은 성인 남성일 텐데. 그리고 그의 형일 텐데? 어린 아이를 들듯이, 혹은 솜으로 안이 채워진 장난감을 안아 들듯이. 너무도 가뿐해 보이는 그 동작이 비현실적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고생했어. .”

 

제 몸을 안아든 동생의 품에 얼굴을 묻고 유현아라는 울먹이는 목소리를 흘리는 것으로, 이 무대의 막이 내릴 예정이었다. 의문의 단체에 납치된 쓸모많은 형. 그런 형을 동생이 직접가서 구해내며 한번 더 형제애를 과시하는 작전. 그래, 중간에 변수가 끼어들어 조금 예정과 달라진 점도 있지만 이정도면 훌륭한 마무리라고. 유진은 생각했다.

이걸로 저를 이용해 먹으려는 협회놈들은 더 이상 동생에게 피해를 끼치지 못할 것이고, 국내의 비난 여론에 휩싸여 제대로 힘을 발휘하기도 힘들겠지.

유진은 저를 안은 한유현을 경계하기 위해 멀어지는 헌터들 사이를 헤치고 이쪽으로 걸어오는 종업원 복장의 여자를 힐끔 보았다. 예림이다. 예림이가 순간이동으로 저를 먼저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키기로 했다. 어쨌든 형을 낙찰받으려 들었던 놈들에게 정당하게 폭력을 행사할 수있는 타이밍은 지금뿐이라는 유현의 고집 때문이었다.

그런데 예림이가 가까이 다가오기 전, 유진은 고개를 숙인 유현이 제 귓가에 입술을 가까이하는 것이 느껴져 움찔 어깨를 떨었다. 직접적으로 피부에 닿지 못하던 타인의 온기가 숨결을 타고 미끄러지듯 고막으로 파고들었다.

 

.”

 

저를 세상에서 유일하게 이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지금 저를 안은 유현이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그에게 형이라는 말을 들은 횟수는 셀수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 들린 이 호칭은 평소와는 그 분위기를 달리했다. 어린시절 제 손을 꼭 붙들고 학교를 갈때 연신 재잘대며 내뱉던 형과는 완전히 달랐고, 제가 하는 짓이 마뜩지않아 화가 난 상태에서 부르던 형과도 조금 달랐다. 이건, 그러니까, 말하자면,

 

“형은 오늘 내가 낙찰했으니까, 내 마음대로 해도 되지?”

 

따지자면, 침대에서. 움직이지 못하게 제 손에 깎지를 껴 내리누르고 저를 부르던 그 음성과 가장 많이 닮았다. 유진이 가장 피하지 못하는 한유현의 목소리였다.

 

? 아니, 이건 그냥 작전

아저씨! 가요! 이동할게요!”

 

당연히 거부하려했다. 이런 곳에서 이런 상황에 무슨 얘기를 하는 거냐고. 하지만 유진이 채 문장을 완성하기 전에 다가온 예림이 유진을 빼았듯 안아들고 순간이동을 해버렸다.

유진은 순식간에 바뀐 제 주변 풍경을 황망하게 바라봤다. 제가 며칠간 묵었던 호텔 스위트룸에 조금도 뒤지지않는 곳이었다.

그곳에 유진을 살포시 내려둔 예림은 발랄하게 웃어보였다. 어디로보나 이제부터 헌터들과 전투를 하러간다고는 생각하기 힘든 웃음이었다.

 

아저씨! 제가 다 박살내고 올게요! 얌전히 기다리세요!”

 

적당히 하라고. 아직 어린데 살인은 안 된다고. 어쩌면 당부를 했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유진에게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내가 유현이랑 안 한지 얼마나 됐었지? 생각해보니 이번 작전을 짠답시고 한동안 어수선해서 동생과 단둘이 그렇고 그런 시간을 보낸지 꽤 오래되어버렸다.

작전을 짜고, 교도소에 갇히고, 그러다가 홍콩까지 끌려오고. 그리고 이제야 일이 마무리되었는데 이 일의 끝을 호텔 스위트룸에서 맞게 생겼다. 그것도 이제 곧 헌터들과의 전투로 던전에 들어갔다 온것 마냥 흥분했을 것이 분명한 동생과.

하지만 침대에 걸터앉아 마른세수를 하던 유진은 곧 한숨과 함께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어차피 피하지 못할거 어쩌겠는가그가 원한다면 얌전히 낙찰당해 줘야지. 이번 일로 고생한 동생에게 형이되서 상을 줄 수도 있지. 자신이 고집을 부려 일이 더 커지기까지 하지 않았는가.

결국 유진은 웃으며 털썩 침대에 몸을 묻었다. 이제 곧 돌아올 제 동생, 가족, 연인. 저를 유린해줄 사랑스러운 이를 기다리며.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