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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내스급

[내스급/유현유진] 달님 인어 유진이 연성이 좋아서 인어AU

by 자렌Jaren 2019. 3. 17.

* 無퇴고 주의

 

 


한유진이 인어공주라는 전혀 달갑지 않은 새 별명을 얻게 된 것은 일주일 전의 일이었다. 이 별명이 차라리 이전에 성 모 씨가 놀리듯 말했던 ‘공주님’이라는 호칭처럼 그저 상황에 따른 비유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유진의 새 별명은 저번과는 달랐다. 그 별명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지금 유진의 모습을 설명하기 가장 알맞은 호칭이었으니까.


“형.”


유진은 저를 부르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헤엄쳐 갔다. 그랬다. 유진은 정말로 헤엄을 쳐서 햇빛이 넓게 깔린 수면으로 다가갔다. 유진의 머리 위에는 햇빛으로 엮인 그물이 펼쳐진 것 같은 수면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유진은 스스로 그 그물에 걸리려는 물고기처럼 위로, 위로, 나아갔다. 그리고 손을 뻗었다. 마치 비가 내리는 날 바라본 창밖 풍경처럼 물로 인해 일그러진 익숙한 이의 모습을 향해서.

가장 먼저 물 밖으로 솟구친 것은 유진의 손이었다. 분명 그것은 이전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손가락 다섯 개를 가진 인간의 것이었다. 길쭉하니 뻗은 마른 손가락에는 군데군데 관절이 불거져 고생을 한 흔적이 고스란히 보였다.
하지만 연이어 인간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은 상체를 물 밖으로 꺼낸 후, 마지막으로 수면을 탁! 치는 소리를 낸 것은 전혀 인간의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금붕어의 것처럼 생긴 하늘하늘한 꼬리지느러미가 수면 밖으로 나와 있었다. 마치 깨끗한 바다의 색이 그곳에 깃든 것 마냥 파르라한 푸른빛을 띤 지느러미는 실크처럼 물 위에 늘어져 물결을 따라 하늘하늘 거렸다.
그 꼬리지느러미가 연결된 하반신을 뒤덮은 것 또한 같은 푸른빛을 띠고 있는 비늘이었다. 비늘이 촘촘히 붙은 쭉 뻗은 하반신에는 이제 더 이상 다리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비늘에 감싸인 유선형 꼬리만이 있을 뿐.
그야말로 동화책 속 삽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모습으로 물 밖에 상체를 내민 제 형을 바라보던 유현은 다음 순간 살짝 입매를 굳혔다.


‘유현아.’


뻐끔뻐끔, 분명 입이 움직이는 것은 보이는데 들려오는 소리는 없었다. 제 귓가를 달게 스치던 목소리는, 어린 시절 형이 읽어준 동화 속의 인어공주의 것 마냥 사라져버렸다. 그래도 그 인어공주는 다리를 얻기라도 했지. 아무 것도 얻지 못하고 물 밖에서는 소리를 낼 수 없게 된 형을 보는 유현의 마음이 결코 편할 리 없었다.


“오늘 형이 변했던 던전에 다시 가보기로 했어. 가서 형을 되돌릴 방법을 찾아보려고. 조금만 기다려.”


하지만 유현은 억지로 제 굳은 입매를 느슨하게 폈다. 가뜩이나 제가 위험에 처할까 언제나 전전긍긍하는 형인데, 그런 형에게 불안을 심어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웃어보였다. 여기서 걱정 말고 기다리고 있어달라고. 온전히 제 형의 마음만을 생각하며 짓는 미소는 창 밖에서 미쳐드는 햇살보다 해사했다.


그런데 그 얼굴을 홀린 듯 바라보던 유진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물 밖으로 뺀 제 손을 유현에게 보였다가 다시 퐁당 물 안에 담가 보였다.

처음에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몰라 제 형이 하는 양을 빤히 보기만 하던 유현은, 곧 유진이 다시 물 밖으로 빼낸 손의 검지를 곧게 펴서 유현의 손을 가리킨 후 다시 제 손을 퐁당! 물 속에 담그고 나서야 형의 뜻을 알아차렸다.
유현은 입고 있던 코트를 벗어 아래로 떨어트렸다. 사람의 키보다 훨씬 높게 만들어 놓은 특수 수조의 위쪽에 버들잎을 타고 올라와 있던 참이라 몇 초 뒤 코트가 풀썩 바닥에 닿는 소리가 들렸다. 그 후, 입고 있던 셔츠의 오른쪽 소매를 걷어 올리고 제 형이 원하는 대로 수조의 물속에 조심스럽게 집어넣었을 때였다.
드디어 바깥에서는 그렇게나 닿지 못하던 유진의 손이 찰싹 유현의 오른손에 얽혀 왔다. 손가락과 손가락 사이에 얽혀드는 곧은 손가락의 감촉이 생생했다. 비록 손바닥과 손바닥 사이에 당연히 물이 한 겹 깔려 있어 피부가 찰싹 맞닿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하지 않으면 닿을 수 없으니까……
인어의 모습이 된 뒤, 대체 피부가 어떻게 약해진 것인지. 물 밖으로 나온 유진의 피부는 다른 이들의 접촉을 조금도 허용하지 않았다. 마치 정말로 인간의 체온이 닿으면 화상을 입는다는 물고기가 된 것처럼.
유현은 아직도 인어가 된 제 형을 옮기기 위해 끌어안았을 때, 제 형의 손에 손이 닿자마자 불긋하게 피부가 달아오르던 장면을 잊지 못했다. 그 생각만 하면 절로 턱에 힘이 들어가 어금니들이 강하게 맞물렸다.
미안해서, 안타까워서.
특히나 다른 이들보다도 더 체온이 높은 유현이었기에 문제였다. 짧은 접촉에도 유진의 손등에는 선명한 화상 자국이 남아버렸었다. 허겁지겁 포션을 뿌려 상처를 치료하긴 했지만, 유진의 손에서 사라진 화상흔은 어느새 유현의 마음으로 옮겨와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 상처는 유현이 형에게 버릇처럼 손을 뻗으려 할 때마다 욱신거리며 통증을 호소했다. 그것에 놀라 화들짝 뒤로 손을 물리던 것이 몇 번이던가.
그렇기에 유현은 비록 직접 닿지 못한 것이라도 제 손에 형이 먼저 손가락을 얽어준 이 순간이 너무도 좋았다. 손바닥 사이에 스며있는 서늘한 물이 기꺼웠다.
그런데 인사를 대신하듯 한번 제 동생을 손을 꼭 쥐어준 유진의 손가락이 다시 스륵 빠져나갔다. 그 찰나가 아쉬워 저도 모르게 유진의 손가락을 다시 잡을 뻔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유현은 금세 제 단단한 손바닥에 닿은 손끝의 감촉 덕분에 조급함을 누를 수 있었다.
살살 손바닥을 간질이듯 노니는 손끝이 만들어낸 것은 글자가 아니었다. 제 동생에게 털어 놓고 싶은 걱정이, 애정이, 당부가 너무도 많았기에 유진은 오히려 글자를 선택하지 않았다. 대신 그 모든 것을 꾹꾹 눌러 담아 지구상에서 가장 흔하게 쓰이는 사랑의 형태만을 유현의 손바닥에 가득 차게 그려내고 고개를 살짝 들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
그렇게 묻는 듯한 검은 눈동자에 어느새 유현의 얼굴만이 가득 담겼다. 상대가 제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는 기대감이 까만 밤에 뜬 별처럼 박혀 있었다.


“응……”


그 찬연한 먹빛을 바라보던 유현이 서서히 손가락을 접어 주먹을 쥐었다. 제 형이 제게 준 것을 놓치지 않겠다는 양 손바닥을 꼬옥 누르는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이윽고 그 메시지를 마음에까지 삼켜낸 유현은 물 밖으로 손을 꺼낸 후, 허리를 숙여 제 형의 정수리에 가볍게 입술을 대었다 떼어냈다.


“나도 사랑해, 형.”

 

끝에 물방울이 올올이 맺혀 서늘한 차가움이 느껴지는 머리카락은 다행히 유현의 따뜻한 입술을 받아주었다. 그리고 그 입술이 떨어진 직후, 바로 머리 꼭대기에서 풀어낸 유진의 메시지에 대한 유현의 화답은 입술보다도 뜨거웠다.
하지만 그 뜨거움을 남겨두고 이제는 나갈 시간이었다. 유현은 버들잎을 밟아 다시 바닥으로 내려왔다. 그러자 유진도 다시 수조 안으로 헤엄쳐 들어와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제 동생과 눈높이를 같이 했다.
유현은 저를 빤히 바라보는 투명한 유리 너머 시선을 바라보다가, 아직 물기가 좀 남아있는 제 오른손을 들어 손을 펼쳤다. 유현은 마치 아까 전 유진의 손가락이 그려낸 하트가 아직도 거기 남아있다는 것 마냥 제 손바닥에 입술을 가볍게 대었다가 떼어냈다.
그 모습에, 동생이 제 입술을 다급히 삼키던 과거의 어느 순간을 저도 모르게 떠올리고 만 유진이 얼굴을 붉혀버렸다. 물속임에도 얼굴이 붉어진 느낌이 확 느껴져서 유진이 황급히 제 얼굴을 숨기려 했지만, 물로 가득한 거대한 수조에 얼굴을 가릴 만한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결국 한손으로 민망하다는 듯 제 얼굴을 어색하게 문지르는 형을 보고 살풋 웃음을 터트린 유현은 충분히 만족하며 이 달콤한 아침의 막을 내리기로 했다.


“……진짜는 돌아와서 해줄게.”


그 말을 마지막으로 유현은 정말 무대 밖으로 퇴장하는 배우처럼 몸을 돌려 현관으로 향했다. 오늘은 반드시 형과 마음껏 닿을 수조차 없는 이 생활을 청산하겠다고 다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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