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제인형]
그가 이상한 콤비를 처음 발견한 것은 거지같은 하루를 마무리하기 직전이었다.
그때는 대체 무슨 마가 끼었는지, 서너 달에 한번 만날까 말까한 온갖 이상한 손님들을 잔뜩 만난 날이었기에 기분이 그리 좋지 않은 상태였다.
술을 마셨으면 곱게 집에나 들어갈 것이지. 딸에게 줄 선물을 뽑아야 한다며 게임센터 인형 뽑기 기계 앞에 들러붙어 있던 거나하게 취한 회사원은 인형을 뽑아가기는커녕 제 배 속에 있던 것을 기계에 선물해 주었다.
교복 차림의 남학생 한명은 여자친구 앞에서 자신만만하게 기계에 덤볐다가 돈만 잔뜩 날리고, 분을 못 참아 발길질을 하더니 기어이 기계를 고장 내고 도망쳐 버렸다. 그 일련의 과정을 CCTV로 뒤늦게 발견하고 어찌나 어이가 없던지. 현장에서 말리지 않고 뭐했냐고 매니저에게 불려가서 혼만 잔뜩 났다.
아이스크림을 질질 흘리면서 먹은 손을 닦지도 않고 기계를 만지작거리는 아이를 내팽개쳐두고 핸드폰만 보고 있는 아이 아빠에게 아이를 제지해 달라고 했다가 욕을 먹은 건 그나마 나았다. 어찌되었든 두 사람이 가게에서 나간 후에 뒷수습을 하는 건 어렵지 않았으니까.
쪼그려 앉아 물티슈로 기계에 묻은 끈적한 것들을 닦아내다가 실수로 손님의 발에 차인 건 좀 슬프긴 했지만.
만약에 신이 하루에 한 명씩 무작위로 뽑아 불행을 몰아준다면, 오늘은 자신이 뽑힌 걸 거라고 생각할 정도로. 그 정도로 오늘은 참 운이 없었다.
그렇기에 초조하게 아르바이트 퇴근 시간만 기다리며 3분에 한 번씩은 손목시계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제 10분 남았다. 이제 10분만 참았다가 가게에서 나가면 더 이상의 불행은 없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며 간신히 안도의 한숨을 내쉰 그는 고개를 들었다가 가게로 막 접어드는 이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흠칫 놀라 버렸다.
게임센터 알바 경력만 3년, 나름 게임센터에 오는 각양각색의 손님을 봤다고 자부할 수 있지만 저런 손님을 본 일은 손가락을 꼽을 정도 밖에 없었다.
가게의 낮은 천장에 거의 닿을 것처럼 보이는 커다란 키에 반팔 교복 밖으로 뻗은 팔은 구릿빛으로 그을린 근육질이었다. 그것에 놀라 얼굴을 바라보니 원체 까만 피부인 것인지, 아니면 여름이라 탄 것인지 구분 되지 않는 거뭇한 피부가 눈에 들어왔다.
더군다나 그저 가게 안으로 들어오는 중일뿐인데도 저렇게까지 불쾌해 보이는 표정이라니!
드라마에 가끔 나오는 가게를 뒤엎으러 들어오는 야쿠자들의 표정이 저러지 않았던가. 아니, 점장 무슨 짓을 한 거야! 설마 이 가게는 이대로 폐업인가! 아, 근데 요즘 야쿠자는 교복을 입나? 저거, 교복 맞지?
꽉 조여지지 않고 적당히 풀려있긴 했지만, 손님의 목 근처에서 흔들리는 것은 인근 학교의 넥타이였다. 반팔 셔츠에 적당히 풀린 넥타이, 옆구리에 끼고 있는 학생용 가방까지 확인하고 나서야 진정을 한 그는 슬금슬금 가게 안쪽으로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제가 그를 보고 놀랐다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이었다.
더구나 비록 학생이라는 걸 알아차렸다지만, 그의 인상이 자신의 거지같은 하루의 정점을 찍어줄 사고를 칠 수도 있겠다 싶게 흉흉한게 사실이었으니까.
제발, 제발, 더 이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말고 퇴근하게 해줘!
그런 간절한 마음으로 저도 모르게 모퉁이에 있는 기계 뒤에 반쯤 숨어, 방금 들어온 손님을 주시하던 그는 뒤늦게 그 손님의 옆에 또 한명의 사람이 서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거야?”
“네. 이겁니다.”
“하, 정말 사츠키 녀석은 대체 이런 게 뭐가 갖고 싶다는 거야.”
“요즘 여학생들 사이에서 이 캐릭터를 가방에 달고 다니는 게 유행이라는 건 저도 알고 있었습니다. 워낙 많이 보이니까요.”
처음 들어온 손님보다 머리 하나는 작아 보이는 존재감이 옅은 이의 하늘색 머리카락이 가게의 미지근한 에어컨 바람에 흔들렸다. 바깥 운동을 오래한 듯 구릿빛으로 탄 학생과 다르게 여름 햇볕에도 그을리지 않은 깨끗한 흰 피부는 옅은 존재감을 더 투명하게 만들어 주는 듯 했다.
키도 체격도 생김도, 어느 것 하나 닮지 않은 그들은 심지어 교복마저 달라서. 같은 학교에 다니는 것도 아니라는 걸 여실히 드러냈다.
그럼에도 무척 친근한 사이인 양 대화를 나누며 가게 안에 들어온 두 사람은 요즘 제일 인기가 많은 인형 뽑기 기계 앞에 나란히 섰다.
“그래서 뽑아야 하는 건 어느 거?”
“뽑아만 준다면 어떤 캐릭터라도 좋다고 모모이 씨가 말하긴 했는데……”
무언가를 고민하는지 잠시 동전을 넣는 것을 망설이던 하늘색 머리 학생은 이내 생각을 마쳤는지 동전을 기계에 넣었다. 삐롱삐롱, 인형 뽑기 기계 특유의 전자음과 함께 집게가 출발선을 떠나는 것이 보였다.
인형 뽑기라는 것은 사실 어느 정도 요령이 필요한 게임이었다. 기계가 조작되었다느니, 어차피 뽑지 못하게 되어있다느니 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사실 크레인을 조작하는 요령은 하면 할수록 늘어나는 법이었고, 하다보면 잘 뽑는 요령을 터득하게 되는 사람들도 제법 있었다.
그리고 아마 지금 동전을 넣고 크레인을 움직인 학생 또한 그런 부류의 사람인지 멀리서 봐도 조작하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아마 노리는 것은 인기 넘버 2 캐릭터 분홍 생쥐인 것 같았다. 처음에는 노리는 생쥐의 위쪽에 크레인 집게가 들어가도록 조정을 해서 툭툭 인형을 앞으로 밀어내더니. 동전을 3번째 넣었을 때쯤에는 완전히 집어내기 좋은 위치까지 이동시켰다. 그리고 정확히 집게를 봉제인형의 머리와 벌린 팔 사이에 집어넣더니…… 성공!
덜컹, 인형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자 옆에 멀뚱히 서서 기계를 바라보기만 하던 무뚝뚝한 표정의 학생이 허리를 굽혀 인형을 끄집어냈다.
키만큼이나 손도 어찌나 큰지 그래도 여학생들이 한손으로 잡으면 팔 다리가 손 밖으로 대롱대롱 나오던 인형이 한손에 쏙 들어가 자취를 감추었다.
그 학생은 제 손에 들린 걸 무심한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슥 제 가방 안에 넣어버렸다. 아마 아까 이름이 나온 ‘사츠키’라는 이에게 전달하는 역할은 이쪽의 몫이었던 모양이었다.
“끝났지? 가자.”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왜? 하나로는 부족하대?”
가방에 달고 다닐 거면 하나면 됐지.
투덜투덜, 그는 아무래도 게임센터에는 영 취미가 없는지 빨리 나가고 싶어 하는 모습이 역력했지만, 기계 앞을 떠나지 않은 이의 곁에서 멀어지지는 않았다.
하늘색 머리카락의 학생은 대꾸 없이 한번 더 동전을 기계에 밀어 넣었다. 삐롱삐롱, 이번에는 목표물이 바뀌었는지 분홍색 쥐들을 지나쳐 크레인이 향한 곳은 까만 곰인형 쪽이었다.
곰인형치고는 인상이 제법 사납고 귀여운 구석은 별로 없어서 그다지 인기가 많은 캐릭터는 아니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 학생은 제법 잡기 좋은 위치에 놓인 (비인기 캐라 일부러 뽑히기 좋은 위치에 세팅해둔 것이지만) 인형을 한번에 잡아 올렸다.
덜컹, 다시 한번 큰 키의 학생이 허리를 숙여 인형을 꺼냈다. 하지만 그는 아까와는 다르게 묘한 표정으로 제 손안의 인형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걸 사츠키한테?”
“아닙니다.”
“그럼 이건 왜 뽑았어?”
“그건 아오미네 군 겁니다.”
“뭐?”
화들짝 놀라 목소리가 높아지는 순간 기계 뒤에 숨어있던 점원의 등골도 같이 서늘해졌다.
싸움인가?! 싸움이냐?! 제발 싸우지 말아줘!
야속한 시계는 느려도 너무 느려서 아직 퇴근시간까지 도착하지 못했는데. 싸움을 말리려고 퇴근이 늦어지는 건 정말 사양이었다.
“그거 아오미네 군을 닮지 않았습니까?”
“이게?”
하늘색 머리카락의 소년이 상대를 놀리는 중이라는 건 멀리 떨어진 점원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앞에 선 친구가 그걸 못 알아챘을 리 없었다. 아니 주먹을 들어서 한 대만 쳐도 나가떨어지게 생겼으면서 대체 뭘 믿고 저러는 거야!
걱정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눈으로 그곳을 응시하던 점원은 이윽고 전혀 뜻밖의 장면까지 목격하고 말았다.
“역시 닮았네요.”
상대의 손아귀에 잡혀있던 검은 곰을 뺏어든 하늘색 머리를 가진 학생은 곰인형의 머리 위에 늘어져 있던 군번줄을 똑 소리나게 갈라서 상대의 옆구리에 끼워져 있던 가방에 걸어버렸다. 또각, 이음쇠 안에 동그란 쇠가 알맞게 걸려들어가는 소리가 들릴 정도의 거리가 결코 아니었지만, 왜인지 그 소리가 귀에 꽂히는 것만 같았다. 아마, 내심 가방에 인형이 걸리는 순간이 하늘색 머리 남학생이 한대 맞고 나가떨어지는 순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리라.
아, 결국 최악의 하루는 철없는 남자 고교생들의 난투를 말리는 걸로 마무리되는 건가.
그런 생각이 요동쳐 자기도 모르게 그들 쪽으로 한발 나섰을 때였다.
“안 닮았어.”
불퉁한 불만이 잔잔히 녹아든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마음에 드는 목소리인지 아닌지를 따진다면 분명 마음에 들지않는 목소리에 가까웠는데. 대체 어찌된 일인지 힘으로 한번에 군번줄도 뜯어버릴 것 같은 팔뚝이 움직이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결국 두 사람이 가게를 나갈 때까지도 곰인형은 검은 가방 한쪽에 매달려 달랑달랑 춤을 추었다. 마치 자신의 생존을 기뻐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곰인형의 웃는 얼굴만 가득 차 있던 점원의 눈동자가 어느새 퇴근 시간이 지나버린 시계를 응시한건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후였다.
***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곰돌이를 그가 다시 만난건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였다. 어느 정도로 짧았냐면. 끔찍한 하루의 기억이 하나도 지워지기 전이었다.
그 인상적인 학생이 까만 곰돌이를 여전히 달랑달랑 매달고 나타난건 바로 다음날이었으니까.
조금 놀라 일방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학생을 빤히 바라보던 그는 학생이 긴다리로 성큼성큼 걸어 자신에게 걸어오자 깜짝 놀라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학생은 그렇게 노골적으로 저를 보고 놀란 티를 내어도 눈길 한번 제대로 주지않았다. 저를 보고 놀라는 사람들을 한두번 본게 아니라는 듯, 신경도 쓰지않고 다가온 학생은 갑자기 곤란해 표정이 되어 그를 돌아보았다.
“이거, 안 됩니까?”
“네? 네? 아!! 그, 금방 끝납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여기 있던 이유도 잊어버리고 도망을 가 버린 셈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무서운 것은 무조건 피하고보는 자기 방어능력만은 발군이었는데. 그 무서움 센서가 지금까지 작동해 버릴 줄은 몰랐다.
결국 점원은 허둥지둥 제가 뒷걸음질 쳤던 거리를 돌아왔다. 그리고 동전 교환기의 동전 충전을 마저 끝내고 기계의 열렸던 앞면을 탁! 소리 나게 닫고 열쇠로 잠갔다. 기계를 정리하는 것과 뒤로 물러난 것이 거의 동시로 보일 정도로 빠른 동작이었다.
그렇게 과장스럽게 자리를 피하고 보니 뒤늦게 마음이 불편했지만, 상대는 여전히 타인에게 새끼손톱 만큼의 관심도 드러내지 않는 무심한 눈동자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말없이 주머니에서 끄집어낸 오천엔을 기계에 집어넣고 모두 500엔으로 바꿔버렸다. 500엔짜리 동전이 제법 손바닥에 묵직하게 쌓일 정도로 쏟아져 나오자 그것을 어렵지 않게 한 손에 틀어쥐고 기계로 향했다.
설마 했는데, 그의 걸음이 향한 기계는 이전에 친구로 보이는 이와 함께 했던 그 기계였다.
그 기계의 기판 위에 500엔짜리 탑을 쌓아둔 그는 날카로운 눈으로 기계의 유리벽 안을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이내 결심했다는 듯이 동전을 집어넣고 신중하게 스틱을 움직였다.
그 얼굴만큼은 비장하여, 이전에 그의 친구가 그러했듯 금방이라도 인형을 뽑아낼 것 같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그는 좀처럼 기계 앞을 떠나지 못했다.
잠시 그 학생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점원이 이내 일을 하러 자리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왔을 때까지도.
그리고 결국 그 학생이 기계 앞을 떠난 것은 족히 1시간은 지난 후였다. 물론 동전 교환기 앞에 2번이나 다시 왔다간 후이기도 했다.
그렇게 떠나는 그의 손에 결국 인형 하나가 꼭 쥐어져 있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일 터였다.
***
그 후로 점원이 한번 더 눈에 익은 곰돌이 인형을 본 것은 한층 더 날이 뜨거워진 어느 날이었다.
그날 그는 가게 앞에 나와서 팻말을 들고 길거리 한복판에 서서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점장이 야심차게 들여놓은 새로운 기계의 홍보를 하기 위해서였다. 속으로 점장 새끼는 꼭 이런 날씨에 바깥에서 일을 시킨다고 욕을 궁시렁 거리며 팻말을 꽉 움켜쥐고 있었더랬다.
마치 장마철에 불어난 강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학생들의 물결 속에서 그들을 발견한 것은 순전히 그 키 큰 학생의 존재감 덕분이었다. 함께 다니는 친구보다 훌쩍 클 뿐만 아니라, 보통 학생들의 평균키를 훨씬 상회하는 키인지라 학생들의 물결 속에서도 그의 머리는 불쑥 튀어나와 있었다.
마치 홀로 물에 잠기지 않는 높은 건물처럼, 그는 한눈에 점원의 시선에 들어왔다. 여전히 그의 옆구리에 끼여 있는 가방에 달린 검은 곰돌이도.
그러다가 아주 짧은 순간, 처음 게임 센터에서 그를 발견했던 운수 나쁜 날 보았던 그의 친구도 발견해 버렸다. 그들은 여전히 높이가 맞지 않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점원은 이내 그 날은 보지 못했던, 새로운 것을 발견해 버렸다. 뽑기 전문가처럼 보이던 그 학생의 어깨에 걸쳐진 가방에 걸린 하늘색 토끼 인형을 말이다.
아, 그날 그렇게 기계에 이마를 콕 쳐 박고 열중해서 뽑아간 게 뭐였나 했더니.
정답을 알아버린 그는 저도 모르게 조금 웃었다. 그들에게 들리지는 않을 거리이기에 안심하고 내뱉은 웃음은 이내 학생들의 홍수에 떠밀려 공기 중으로 흩어져 버렸다.
ʕ순ᴥ순ʔ₍ᐢ ㅍ ༝ ㅍ 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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