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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쿠로코의 농구

2018년 1월 28일 청흑전력 [생크림]

by 자렌Jaren 2018. 1. 28.

*섹스 피스톨즈 설정 기반

*남성 임신 표현 주의



생크림

 

 

하얀 크림에서는 달짝지근한 향이 났다. 산타의 수염 같은 그 풍성한 덩어리에서 풍기는 달짝지근하고 고소한 향을 코와 눈으로 음미하며 아오미네는 조심스럽게 칼을 움직였다.

제가 눈앞이 흐려지는 끔찍한 순간을 겪으면서 간신히 사온 생크림 케이크는 거대한 사이즈의 홀 케이크였지만, 어차피 이걸 먹을 사람의 위장 안으로 사라질 양은 끽해야 한두 조각에 불과하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최대한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플라스틱 칼로 케이크를 잘라냈다.

이상하다, 보통 임신하고 나면 먹고 싶은 것도 많고 먹는 양도 많이 늘어난다고 하던데. 아오미네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임산부를 가까이서 본 일이 많았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 정도 상식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제 인생에 처음으로 가까이서 접하게 된 임산부는 어떻게 그 몇 안 되는 상식에도 맞는 구석이 없었다. 원래도 햄버거 하나에 배가 잔뜩 불러하던 사람이라, 두 사람 분을 먹게 되면 그래도 먹는 양이 늘까 했는데. 늘기는커녕 오히려 더 줄어 들어버렸다.

이걸 먹어도 욱, 저걸 먹어도 욱. 좀처럼 그치지 않는 입덧이라는 것으로 인해 더욱 말라가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으니. 하루하루 말라가는 그의 손목을 붙잡고 이거라도 좀 먹으라며 그 좋아하던 바닐라쉐이크를 턱 밑에 대 주었을 때도 욱! 하는 토기가 올라오는 소리가 났을 때는 정말 최악이었다.

그게 마지막 수단이라고 생각했는데…… 마지막 수단마저 거부당하면 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지? 그렇게 걱정과 절망이 뒤범벅이 되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던 순간 들려온 단어가 바로 생크림 케이크였다.

 

……생크림 케이크라면 조금 먹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홀쭉해진 얼굴로 입을 여는 그 얼굴이 어찌나 안쓰러운지. 그 마른 얼굴에 마음에 울컥 애틋함이 치밀어 가만히 볼을 쓰다듬어준 아오미네는 방으로 달려가 코트를 걸쳤다. 얼굴에는 마스크를 걸고, 머리에도 비니를 푹 눌러 썼다. 목도리와 장갑으로 밖으로 나온 모든 피부를 꽁꽁 가렸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자신은 분명 케이크 가게에서 돌아오는 길에 기절해버릴 것이 뻔했기에 완전 무장을 해야했다.

 

지금 당장 가려는 겁니까?’

 

전 당연히 내일 해가 떠 있을 때, 사다달라는 뜻이었습니다.

주섬주섬 옷을 껴입고 나갈 준비를 하는 아오미네가 오히려 더 걱정이 되었는지 아주 살짝 부른 배를 조심스럽게 받치고 방으로 들어선 이가 말했다. 하지만 아오미네는 오히려 귀마개까지 야무지게 착용하며 괜찮다는 양 고개를 끄덕였다. 웅얼웅얼, 무어라 말하는 것 같았지만 마스크에 목소리가 어찌나 두꺼운지 목소리는 제대로 밖으로 새어나오지 않았다.

뭐라고 한 겁니까?’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잡아내려 상대가 한 번 더 묻자. 아오미네는 더는 말하기를 포기하고 성큼성큼 방 문 앞에 서 있는 상대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다리와 등을 받쳐 들어 번쩍 그를 안아 들었다. 그렇게 두껍게 옷을 챙겨 입은 상태에서 잘도 그렇게 움직인다 싶게 기민한 움직임이었다.

상대는 갑작스러운 행동에 조금 놀란 듯 했지만, 이내 저에게 닿지 않았던 아오미네의 말을 행동으로 읽어내고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그 정도는 갔다 올 수 있어.’

 

그 말이 조금 늦게 상대에게 닿아, 마음에 안심을 심어 주었다.

그렇게 아오미네는 거실에 있는 넓고 폭신한 소파에 조심스럽게 상대를 앉혀 놓고 씩씩하게 현관 밖으로 나섰더랬다. 체온조절이 힘든 뱀목에게는 최악의 날씨인 겨울바람을 뚫고 오로지 생크림 케이크를 사기 위해서!

그리고 그 희대의 도전은 약 한 시간 만에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다.

 

테츠, 잠깐만 기다려.”

 

아오미네는 잘라낸 생크림 케이크 조각을 접시에 옮겨 담고 포크를 꺼내 쟁반에 함께 올렸다. 다행히 케이크 모양이 크게 망가지지 않아서, 무척 만족스러웠다. 이제 그의 손에 케이크가 전달되는 순간 곧 찬바람 속에서 벌였던 자신의 사투도 무사히 해피 엔딩을 맞이할 것이다.

사실 상대를 안심시키고 나갔던 게 무색하게 바깥의 공기를 쐬는 순간 의식이 가볍게 삼도천 너머로 날아가는 기분을 느끼기는 했었다. 정말 죽을 뻔 했다. 그래도 자신에게 남아있는 가장 밑바닥의 정신력까지 모두 박박 긁어모아 어떻게든 다리를 움직였다.

사실 제 정신력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을지도 몰랐다. 올 겨울 들어 최대 한파라는 날씨는 뱀목이라 체온조절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아오미네에게는 너무 잔인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제 걸음에 깃든 심지는 자신이 아니었다. 자신이 아닌 집에서 저를 기다릴 한 사람, 아니 두 사람을 위한 것이었기에 그들을 생각하며 어떻게든 간신히 기절하지 않고 다녀올 수 있었던 것이라고. 아오미네 스스로도 생각하고 있었다.

 

아오미네 군도 어서 이리 오세요.”

 

팡팡, 푹신한 쿠션감이 일품인 소파의 옆자리를 가볍게 내리치는 손길에 아오미네의 걸음이 빨라졌다. 애초에 부엌에서 거실까지 그리 길지 않은 거리인 데다가, 워낙 키가 큰 만큼 다리도 길고 보폭도 넓은 사람이라 금방 저를 부르는 사람의 곁에 올 수 있었다.

아오미네는 제 연인의 곁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들고 온 쟁반을 소파 앞 테이블에 내렸다. 그리고 접시를 들어 포크로 생크림 케이크를 조금 잘라낸 다음 그의 입가로 가져갔다.

이렇게 누군가에게 음식을 먹여주는 일이 무척이나 어색했던 것은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니었다. 처음 수저를 들기도 힘들어 하던 쿠로코의 곁에서 안절부절 못하다가 수저를 든 것이 임신 초기 때의 일이었으니까.

그 날 이후로 오늘이 오기까지, 먹는 걸 힘들어하는 그에게 조금이라도 더 먹이기 위해 노력하다보니 먹여주는 것쯤이야 아주 익숙하게 해낼 수 있게 되었다. 쑥스러움에 얼굴이 붉어지는 일도, 손이 조금 떨리는 일도 이제는 없었다.

그리고 그 케이크가 입가에 다가온 사람 또한 이제, 받아먹는 것에 익숙해졌고.

가볍게 코 아래 다가온 케이크의 냄새를 맡는지 그의 숨소리가 조금 깊어졌다. 아오미네는 조마조마해져서 저도 모르게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그 탓에 흔들림이 없던 포크 끝이 조금 흔들리기까지 했다.

보통 저렇게 냄새를 맡으면 얼마 안 되서 판가름이 나곤 했다. 과연 먹을 수 있는 음식일지 아닐지. 입덧이 욱, 하고 솟구치는 음식들은 냄새만으로도 그를 힘들게 해서 항상 이쯤에서 냄새만 맡고 다급하게 밀어내곤 했다. , 이제 반응이 올 것이다.

 

1,

2,

3됐다!!!

 

맛있습니다.”

 

살짝 벌어진 입술 속으로 포크 위에 걸려있던 케이크 조각이 모습을 감췄다. 제가 맡기에도 달짝지근하고 고소하던 그 하얀 것의 냄새가 그에게도 역하지 않았는지 다행히 입이 열렸다. , 한 입에 안으로 들어간 케이크를 꼭꼭 씹어 목 너머로 넘긴 그가 배시시 웃으며 맛있다고 말을 하는 순간에는 어찌나 기쁘던지.

 

더 먹어. 많이 있어.”

 

한번 더, 포크에 소담하게 쌓인 하얀 크림이 마치 바깥에 잔뜩 쌓인 눈을 퍼 올린 것 같아 보였다. 그 생각만으로도 아까 저를 덮쳤던 끔찍한 추위가 다시 생각나는 것 같아 아오미네는 애써 눈을 깜박여서 제 상상을 지웠다. 다행히도 그 케이크 또한 금새 그의 입 속으로 사라졌다.

 

생크림 케이크는 잘 맞나보네. 다행이야.”

저도 아오미네 군도 특별히 잘 먹는 음식은 아니었는데입맛이 특이하네요.”

 

입맛이 특이하다는 게, 누구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지 생각하니 아오미네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그러게, 대체 누굴 닮은 건지 모르겠네. 작은 투덜거림은, 그렇게 아직 얼굴도 보지 못한 상대에게 내보이던 아오미네는 조금 시선을 내렸다. 제가 든 포크보다 아래 쪽, 옆에 앉은 이의 배 위를 향해서.

그러자 그 시선을 따라 움직이니 물빛 눈동자도 곧 같은 곳에 도달했다. 두 사람이 바라보는 같은 풍경 속에 있는 이에게 들려주기 위해서, 쿠로코는 제가 입에 넣었던 케이크를 꼭꼭 씹어 넘기고 입을 열었다.

 

누굴 닮을지는 아직 모르지만, 저는 역시 이었으면 좋겠습니다.”

? 안 돼. 뱀이라고 해봐야 겨울에 불편하기만 해. 겨울에는 생크림 케이크가 먹고 싶어도 밖에 나가지도 못할 텐데 그게 뭐가 좋아?”

 

당연히 테츠를 닮아야지. 반드시 그리 될 것이라 선언하는 듯한 음성에 쿠로코는 조금 웃었다. 그 미소를 띤 입술에 아오미네는 한번 더 케이크 조각을 들이 밀었다. 더 먹어, . 말 없는 종용. 그런데 종용에 보답하기 위해 입술을 열던 쿠로코가 무슨 일인지 갑자기 입술을 닫았다. 그리고는 제 앞에 있던 아오미네의 포크를 주니 손에 손을 올렸다.

 

뭐야, 갑자기?”

 

제 손 위에 올려 진 손에 가해진 힘이 원하는 것은 분명해서 따라 하기 쉬웠다. 아오미네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쿠로코의 손이 이끄는 대로 움직였다. 마치 레일을 따라 달리는 기차처럼.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것 마냥 아오미네의 손에 방향을 바꾸더니 포크의 끝이 그의 입을 향했다. 그리고 그대로 직진, 종착역은 자신의 입 안. 쿠로코가 포크의 방향을 돌려 아오미네가 스스로 케이크를 먹게 했던 것이다.

제 입술로 포크 끝이 다가오니 찔리기 싫으면 입술을 벌릴 수밖에 없었던 아오미네는 결국 단맛을 한 가득 입에 머금었다. 입안을 채우는 부드러운 달콤함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잔뜩 사왔으니 쿠로코가 먹을만큼 먹는다면 나중에 저도 한 조각 맛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졌다.

역시 나름 맛집이라고 소문난 곳을 검색해보고 간 보람이 있네.

잇새에 물리는 부드러운 크림이 거의 다 목 너머로 넘어갈 때까지, 느긋하게 이어지던 생각이 끈긴 것은 너무도 갑작스러운 순간이었다.

 

닿았다. 방금 전까지 달달한 것을 먹어 사탕처럼 달콤해진 부드러운 살덩이가 제 입술 위에 닿았다. 아오미네가 입에 들어온 케이크를 다 먹고 포크를 내린 그 사이, 옆에 앉아 있던 이의 입술이 날듯이 다가왔다. 그리고는 그 고소한 단맛을 나누려는 듯 부드럽게 부벼지다 떨어졌다.

그 탓에 원래 누구의 입술에 묻어있던 것인지 모를 흰 생크림이 입술에 묻어 아오미네는 그것을 혀로 핥았다. 아주, 달아서. 너무 지독하게 달아서 머리가 아찔해지는 느낌. 그 감촉을 거듭 느끼기 위해 아오미네는 포크를 손에서 놓아버렸다. 아직 남은 케이크가 담겨 있던 접시도 테이블에 내려놔 버렸다.

대신 그 손에 붙잡힌 것은 언제나 희고 고운 제 연인의 몸. 얇은 잠옷 너머로 선명하게 느껴지는 그 몸을 가득 끌어안으며 아오미네는 쿠로코의 목덜미에 입술을 묻었다. 어쩌면 진짜 식사는 지금부터 시작일 런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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