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고 X
어린 시절부터, 한유현의 몸이라는 건 한유진에게 꽤나 익숙한 것 중 하나였다. 부모의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지 못했던 어린 동생에게 형이 해줄 수 있는 것들은 꽤나 다양했으니까. 계절에 맞는 옷을 갈아입히고, 식사를 차려주고, 잠을 재웠다. 그리고 당연히 씻을 줄 모르는 동생을 씻겨주는 것도 한유진의 몫이었다.
유현은, 어린 시절에는 제 또래보다도 퍽 작은 편이었기에 아직 어린 아이였던 유진의 손으로도 수월하게 씻는 걸 도와줄 수 있었다. 말캉한 볼을 물을 묻힌 손바닥으로 쓰다듬어주고, 머리카락에 가려졌던 보드라운 이마도 꼭 감은 눈꺼풀 위와 앙 다문 입술 위도 깨끗해지도록 문질러 닦아주었다. 어디 얼굴뿐일까? 옷을 홀랑 벗겨서 같이 욕조 안에 들어간 것도, 조금은 까실한 샤워 타올에 비누 거품을 잔뜩 내서 온몸을 문질러 준 것도 전부 자신이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한유진은 한유현의 알몸 같은 건 어린 시절부터 볼만큼 봤다고 자신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누군가 ‘한유현 선수 몸 봤어요?’라고 묻는다면 냉큼 고개를 끄덕일 자신도 있었다. 거짓말이 아니니까.
하지만 지금, 제 눈앞에 바짝 다가선 동생의 몸을 본 순간 유진은 아무래도 자신이 없어졌다. 자신이 ‘봤다’고 주장하는 근거가 되어 줄 어린 동생의 몸과 지금의 몸은 아무래도 같은 것으로 취급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것 같았으니 말이다.
양 옆으로 넓게 딱 벌어진 어깨는 기사에서 태평양이라고 묘사될 정도로 드넓었다. 그런 넓고 단단한 어깨에서부터 이어지는 가슴과 배는 신이 직접 신중하게 조각한 것처럼 완벽했다. 너무 빈약하지도, 그렇다고 과하게 부담스럽지도 않은 적당한 크기의 흉근과 전거근. 그 아래에 자리 잡은 복근은 정을 대고 쪼갠 돌도 이렇게 반듯하지는 않겠다 싶을 만큼 좍좍 보기 좋게 갈라졌다.
그 몸이 제 눈앞에 다가서는 순간 유진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군침 도는 몸매, 라고 한유현이 아시아 게임에서 금메달을 차지했다는 인터넷 기사에 달아둔 댓글을 보고 분노했던 게 엊그제였던 것 같은데…… 화를 냈던 게 무색하게 댓글 단 사람의 마음을 절절하게 이해해버렸다.
심지어 지금, 한유진은 자신이 보고 성희롱이라며 방방 뛰었던 이들에게 오히려 기만자라고 욕을 먹어야할 상황에 처해 있었다.
“안 만져?”
풀에서 수영을 하고 나온 지 얼마 안 되어 아직 촉촉하게 젖어있는 머리카락이 고갯짓을 따라 흔들렸다. 물에 젖은 탓에 말랐을 때보다 더 선명하게 곱슬기가 티 나는 머리카락이 이마에 달라붙어 있는 걸 본 한유진은 저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이마에 붙은 머리카락을 떼어 뒤로 넘겨주는 손길은 익숙했다. 어린 시절부터 매번, 경기를 끝내고 돌아온 동생의 이마에 붙은 머리카락을 넘기고 드러난 이마에 입술을 대주었으니까. 짧게 입술을 댔다 떨어트린 후, ‘수고했어.’라며 오늘도 훌륭한 경기를 보여준 동생을 칭찬해주는 것. 그건 너무 익숙하게 한유진이 반복해온 일이었다. 동생의 키가 저를 넘어, 이마에 입술이 닿으려면 동생이 허리를 숙여주어야 가능하게 될 때까지 계속해서 해왔다. 그러니 어찌보면 이 상황에서 유진의 손이 닿기에 가장 익숙한 장소는 이마가 맞았다.
“여기가 아니잖아.”
무슨 소리지? 그 생각이 한유진의 머릿속을 스치는 것과 동생의 커다란 손이 한유진의 손목을 잡는 것은 동시에 이루어졌다. 그리고 유현의 손이 유진의 손을 제 가슴 위에 얹은 것 또한, 유진이 반응할 틈도 없는 아주 찰나에 이루어졌다.
처음 든 생각은 차갑다, 그리고 그 다음은 단단하다. 이미 동생의 머리카락을 훑는 동안 손가락에 물이 묻었건만, 손바닥이 물기 있는 피부에 닿자 새삼스럽게 찬 기운이 스몄다. 그 탓에 놀란 손가락이 살짝 굽혀지자, 자연스럽게 유진의 손끝이 유현의 단단한 가슴 위를 눌렀다. 아까까지 폭발적으로 약동하며 물을 갈랐던 근육이다. 힘껏 줄었다 늘었다를 반복하며 바짝 달아올라 팽팽해진 힘줄이 손바닥에 닿는 것 같다는 착각까지 일었다. 유진은 그 생생한 뜨거움에 놀라 저도 모르게 손을 떼려했다. 하지만 그건 생각이었을 뿐, 제 손목을 단단히 잡은 손이 꿈쩍도 하지 않았기에 유진의 손 또한 유현의 가슴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유진이 놀란 눈동자를 한 채로 고개를 살짝 들자, 그때까지 유진을 웃음기 어린 얼굴로 바라보고 있던 유현의 얼굴이 보였다. 놀라거나 긴장하기는커녕, 제 형의 손이 제 맨가슴을 누르고 더듬는 모든 감촉이 달갑다는 표정이었다.
손과 가슴 사이에 있는 물기가 마치 접착제라도 된 것처럼 유진의 손이 가슴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그 탓에 손을 떼어내기 위해 손가락에 힘을 주는 동작마저 동생의 가슴을 주무르는 것처럼 보이는 꼴이 되었다. 아니, 주무르는 게 맞았다. 떨어지려는 목적을 가지고 행한 행동일지라도, 결국 그 탱탱한 살에 손을 비비고 근육을 손가락으로 눌렀으니 이건 주무른 게 맞았다.
아무리 지금 이곳이 한유현의 단독 연습을 위해 대관된 공간이라 주변에 아무도 없다고 해도, 집이 아닌 실외에서 하기에는 적절치 못한 행동이라고.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화들짝 놀란 유진이 뒤늦게 동생의 손목에 다른 손을 올렸다. 어떻게든 그 손을 떼어내고자 살짝 힘을 주자, 지금까지 마치 굳기라도 한 것처럼 형의 손목을 강하게 쥐고 있던 것과 다르게 유현의 손이 쉽게 떼어졌다.
“형이 만져보고 싶다며.”
어째 순순히 손을 떼게 해준다 했더니, 이번에는 그리 순순치 않은 말이 돌아왔다. 왜 형이 바라는 대로 해줬는데, 떼어내고 싶어 해? 아무 것도 이상한 것은 없었다는 양, 구는 그 목소리가 어찌나 순진하게 들리는지 유진도 흠칫 제가 잘못한 건가 싶어 놀랐을 정도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유진은 한유현을 너무나 잘 아는 사람이었다. 더구나 이 정도의 ‘척’은 얼마든지 간파할 수 있을 정도로 눈치도 빠른 사람이었다.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만져보고 싶다고 했다는 말이었지.”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서라며, 연습장에 형만 들어오게 한 채 연습을 하고 있었기에 이곳에는 단둘 뿐이었다. 그건 유진 또한 유현이 가볍게 워밍업을 하기 위해 느린 속도로 수영장 레일을 오길 때, 따로 잡담을 나눌 상대가 없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동생이 몸을 푸는 동안 유진은 핸드폰을 꺼내 유현에 대한 기사를 검색하는 걸로 시간을 때웠다. 그리고 그 기사에 달린, 몇몇 댓글들을 동생에게도 말로 전해주었을 뿐이었다. 네 인기가 이렇게나 대단하다고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한유현 가슴 만져보고 싶다, 라니 이런 댓글은 어째 사라지지도 않냐.’ 라고 가볍게 투덜거리는 한유진에게 한유현이 다가온 것이었다. 풀장 밖으로 훅 제 몸을 끌어낸 유현이, 유진의 앞으로 바짝 다가서더니 한 행동이 바로 이것이었다. 그래서 그 점을 지적했는데도, 유현은 여전히 천연덕스럽게 웃었다.
“그랬던가? 물에 있으면 잘 안 들려서.”
“잘못 들은 척하지 마라.”
“안 통해?”
“안 통하지. 내가 널 모르겠냐.”
놀리려는 걸까? 아니면 바라는 게 있는 걸까? 아직은 동생의 의도까지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기록을 재기 위해 빠르게 수영하던 중도 아니고, 느릿하게 유영을 하고 있던 도중에 일부러 크게 낸 제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는 말은 믿지 못했다. 그렇기에 유진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 정도로 저 뭔가 바라는 게 있는 게 분명한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질리 없다는 걸 알았으니까.
“그러면…….”
허리가 숙여진다. 바짝 다가온 유현의 얼굴이 관자놀이를 스쳐 귓가에 닿았다. 아직 물기가 닦이지 않은 젖은 입술이 귓가에 다가붙었다. 마치 비밀 이야기를 할 때와 같은 행동에 어울리게 목소리도 한결 낮아졌다.
“이대로 돌아가서 섹스하고 싶다는 말도, 안 통해?”
젖은 몸을 제대로 닦아내지도 않고 샤워실에서라도, 혹은 몸을 닦아낸 후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오른 차 안에서라도, 아니면 최대한 인내심을 발휘해서 집에 도착한 후에라도. 어쨌든 어느 때라든 좋다고 말하는 듯한 은근함이 깔린 목소리가 유진의 고막을 핥았다. 비밀 얘기처럼 할 만한 얘기에는 썩 어울리는 제안. 그것이 유진의 등줄기에도 촘촘하게 소름이 돋게 만들었다. 정말이지, 점점 솔직해지는 이 동생을 어쩌면 좋을까. 그리고 물론,
“그건, 통하지.”
이 모든 걸 거부할 생각이 점점 사라지는 스스로를 어쩌면 좋을까.
답이 없을 걱정은 속으로 삭이며 유진은 조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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