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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내스급

2022년 7월 16일 유현유진 전력 [물]

by 자렌Jaren 2022. 7. 17.

* 퇴고 X

 

 

 

머리카락 끝에 맺혔던 물방울이 아래로 똑 떨어져 내렸다. 이미 한바탕 머리부터 물을 뒤집어쓰고 욕조에 가만히 앉아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유진은 가만히 제 머리카락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그리는 동심원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몸을 뒤로 기울였다. 유진의 등은 오래지 않아 제 등 뒤에 앉아있던 이의 맨가슴에 무사히 안착할 수 있었다.

 

“피곤해?”

“가만히 앉아 있으려니 나른하네.”

 

몸이 닿으니 자연스럽게 유진의 허리에 감겨있던 유현의 팔에도 힘이 들어갔다. 형이 물로 더 깊이 미끄러지지 않게 단단히 고정한 팔의 강인함과 달리 한 없이 다정한 목소리는 유진의 나른함을 배가 시킬 뿐이었다.

더군다나 가슴 아래까지 찰랑이며 차오른 욕조 속의 물은 두 사람이 욕실에 들어온 지 꽤나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조금도 식지 않았다. 유현이 아까부터 물이 식지 않도록 열기를 조절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긴장은 풀리고 노곤함은 더해져서 기어이 유진의 입에서는 하품까지 흘러나왔다.

 

“졸리면 이대로 자도 괜찮아. 형이 잠들면 내가 안고 나갈게.”

“됐어. 아직 너한테 그런 수발까지 받을 나이 아니다.”

“안고 나가면서 바로 물기도 말려주고 침대에 눕혀줄테니까, 형은 편할 텐데?”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잠들기만 하면, 그대로 내가 당신을 안고 나가 몸도 말려주고 옷도 갈아입혀서 포근한 침대에 재워주겠다는 제안이라니. 받아들이지 않는 게 말이 안 될 정도로 조건이 좋은 유혹이다. 당연히 이대로 냉큼 눈을 감고 연인의 품에서 잠들지 않을 사람이란 세상천지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유진이기 때문에, 한유현의 연인이지만 동시에 형이기도 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유진에게만큼은 그 유혹이 통하지 않았다.

형이 되어서, 동생에게 해주지는 못할망정 동생을 귀찮게 하고 싶지 않다.

그런 형의 자존심이 꼿꼿하게 자기주장을 하며 고개를 치켜든 탓에, 밀려들던 잠이 오히려 달아나버렸다. 내려오던 눈꺼풀이 뜨이고, 눈동자에 반짝 생기가 깃들었다. 대체 그 형이라는 호칭 하나가 뭐라고 이러나 싶을 법도 했지만, 한유진에게는 그렇게 흐물흐물 녹아가던 정신마저 다시 단단히 뭉쳐질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왜 이런 유혹을 해?”

“유혹해도 안 넘어왔으면서.”

“너 번거롭게 하는 건 싫다.”

 

하지만 유혹이 실패했다고 해서 실망감 같은 게 밀려들진 않았다. 마치 당연히 이리 될 줄 알았다는 것처럼, 그저 가볍게 투덜거렸을 뿐. 유현의 목소리는 여전히 한껏 부드러웠다. 그 목소리만큼이나 녹진녹진한 입술이 자연스럽게 유현의 관자놀이에 닿았다. 그곳에서부터 목소리가 흘러, 형의 귀 속에 쏙 들어가라고 그러는 듯 유현은 그대로 입술을 유진에게 붙이다시피 가까이한 채 낮게 속삭였다.

 

“내가 형한테 해주는 걸 번거롭다고 느낄 리가 없잖아.”

 

그래, 너라면 그러겠지. 그걸 내가 어떻게 모르겠냐.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제 동생이 제게 품은 마음을 알게 된 유진이 모를리 없었다. 하지만 단순히 그러리라 생각하는 것과 말로 확답을 받는 것은 달랐다. 유진은 저도 모르게 자꾸만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숨기지 못하다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욕조 안에서 동생의 다리 사이에 앉아 기대어 있던 지라 자연히 유현의 허벅지에 유진의 몸이 스쳤다. 당연히 허리에 감긴 유현의 팔에도 유진의 허리가 스쳤다. 따뜻한 물보다도 더 뜨겁게 느껴지는 동생의 체온이 제 몸을 스치는 통에 간신히 가라앉힌 아래쪽이 다시 위험해질 것 같은 느낌도 들었지만, 다행히 유진은 유현을 마주볼 때까지 아래를 세우지는 않을 수 있었다. 당장은 접촉보다 궁금한 것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너는 물로 씻는 거 괜찮냐?”

“응? 씻는 거?”

“그래. 아까 전에 피스 봤잖냐. 욕실에는 절대 안 들어오려는 거. 불이라서 물이 싫어서 그러는 거면 너도 싫지 않을까 해서…….”

 

네가 당연히 내게 무엇이든 해주고 싶듯이. 나도 당연히 네게 모든 걸 해주고 싶다고. 유진은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아까 전 욕실 문이 열리자마자 도망을 치기 바쁘던 피스가 떠올랐다. 불로 더러운 걸 태워서 씻어낼 수 있으니 물에 닿을 필요가 정말로 없는 게 맞다고 하니 내버려 두었는데. 생각해보니 제 동생 또한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게 떠올랐다.

마치 정해진 습관처럼 함께 욕실에 들어올 때는 깨닫지 못했는데, 가만히 있으니 그런 곳에까지 생각이 미쳤다. 인간은 물로 씻을 필요가 있는 존재지만, 이제 제 동생이 평범한 인간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필요 없고 싫은 일이라면 강요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걱정을 조금 담은 채 물어본 유진과 달리 유현의 얼굴에는 조금의 난감함도 서리지 않았다. 오히려 저를 향한 걱정이 담뿍 담긴 형의 얼굴을 제 눈에 가득 담으며 웃었을 뿐.

유진은 가볍게 눈을 깜박였다. 속눈썹에 달라붙었던 물기가 그 움직임에 방울져 떨어지고, 노곤함에 흐릿해졌던 눈동자가 맑게 개었다. 동생의 예쁜 얼굴을 더욱 잘 볼 수 있게 된 유진의 눈동자가 그 얼굴에 달라붙어 떨어질 줄을 몰랐다.

그런 형을 바라보던 유현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형, 나는 눈도 좋아해.”

“…….”

“어릴 때 눈이 오면 형이 데리고 나가서 놀아줬잖아. 한참 눈을 만지고 있으면 손 시렵지 않냐고 하면서 손을 잡아주기도 했고. 눈사람을 만들면 형이 좋아하니까, 나도 좋아”

 

조곤조곤 그때를 떠올리고 있는지, 유현의 손이 어느새 유진의 손을 잡았다. 작은 손이 제 것보다 더 작은 손을 잡고 조물조물 주무르던 그 때처럼. 유현의 손이 물속에서 제 형의 손을 가볍게 주물러왔다. 이제는 유진의 것보다 훌쩍 커진 손은, 손바닥을 손가락을 그리고 그 손가락 사이사이를 스치며 물에 조금 불어 평소보다도 말랑해진 피부를 주무르고, 또 간지럽혔다. 유현의 웃음기가 더욱 짙어졌다.

 

“씻는 것도 마찬가지야. 어릴 때 욕실에서 형이 머리도 감겨주고 몸도 씻어줬잖아.”

“그거야… 그랬지.”

“형이 눈을 꼭 감고 있으라고 얘기해주는 것도 좋았고, 조심조심 문질러서 닦아주는 것도 좋았어.”

“그러냐?”

“응. 그러니까 나는 형이랑 씻는 걸 좋아해.”

 

그것이 본능적인 거부감보다도 강한 감정이었다. 지금의 한유현은, 한유진이 만든 한유현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형도 이제는 알고 있었을 사실이지만, 유현은 그 사실을 한 번 더 기쁘게 읊어주었다. 그것 또한 역시나 형이 제가 이렇게 말로 확인시켜주는 순간, 새삼스럽게 밀려드는 기쁨을 참지 못하리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기쁨이 한 차례 열에 들떴던 순간이 지나, 간신히 가라앉혔던 흥분을 다시 돋우리라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유현은 바짝 다가붙어 있어 모를 수 없는 형의 변화를 느꼈다. 아래쪽에 고인 열기가 달라붙은 몸에도 와 닿았다. 그렇기에 유현은 고개를 숙인 형이 민망해한다는 걸 알면서도, 유진의 허리에 두른 팔을 풀지 않았다. 제게서 몸을 물리고 싶은 것마냥 꼼지락거리는 움직임이 반사적인 행동임을 알았다. 결코 진심으로 싫어서 거부하려 밀어내는 것이 아니다. 이럴 때는 오히려 부추김이 필요했다. 그 마지막 부추김으로 지금 딱 어울릴 말을, 유현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 뒤로 형이 욕실에서 하면 좋은 걸 많이 알려주기도 했잖아.”

“너…….”

“나는 형이랑 욕실에서 하는 것도 좋아.”

 

몸에 감기는 물이 뜨겁다. 아니, 이건 형의 체온이 높은 것일 테다. 흥분은 높아지고, 체온이 달아오른다. 심장이 뛰는 소리가 아까보다 선명히 들려온다. 젖은 입술이 달싹거리는 소리도, 제게 잡힌 형의 손에 힘이 들어가서 제 손에 깎지를 끼어오는 감촉도 느껴진다. 이 모든 게, 한유진이 한유현을 원하는 증거임을 안다.

그렇기에 유현은 허락이 떨어지는 말이 입술 밖으로 새어나오기 전에 유진의 입술을 머금었다. 물기가 아닌 타액으로, 자신이 물보다 더욱 기꺼워하는 그것으로 둘의 입술이 흠뻑 젖어들 때까지. 욕실을 다시 달구는 행위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행위는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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