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치마]
“2번 테이블에 아이스 아메리카노 추가!!”
“주문하신 아이스크림 와플 나왔습니다.”
“어서오세요! 한 분이신가요?”
“두 명입니다.”
“아? 헉!!”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익숙한 공간은 평소와는 전혀 다른 낯선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분명 평소 때는 학생들이 책을 펼치고 앉아있었을 책상들은 서너 개씩 붙여져 아기자기한 무늬가 있는 식탁보로 덮여 있고. 선생님들이 부지런히 수업 내용을 적어 내려가던 칠판에는 ‘일일 cafe’라는 단어가 대문짝만하게 자리 잡았다.
오늘 하루 교실이 아닌 카페가 되어 버린 공간 앞에 선 두 사람 중 한사람은 왜 인지 주춤거리며 어색하게 걸음을 멈추었다. 그것은 그들이 이 학교를 부지런히 돌아다니는 학생들과 전혀 다른 교복을 입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역시 그 어색함의 가장 큰 이유는 교실 안에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부지런히 서빙을 하는 학생들과 같은 성별이기 때문이리라.
손님을 안으로 안내하는 남학생도 지금 이들이 들어올 가게를 잘못 찾은 건 아닌가 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여학생들이 하늘하늘한 앞치마를 입고 부지런히 호객을 하고 있어 남학생들을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이고 있는 가게는 옆 교실인데?
실제로 이 교실에 들어오는 다른 학교 남학생들 중 한 명은 순간 고민이 된 것처럼 들어오기 전에 옆 교실을 슬쩍 쳐다보기도 했더랬다.
“여기는 저 혼자 들어가도 되니까, 후리하타 군은 저쪽 교실로 가셔도 됩니다.”
“아? 정말? 그…그럴까?”
“네, 돌아가게 되면 연락해주세요.”
“그…그래 그럼!”
결국 그들 중 한명은 슬쩍 발을 빼버리고 다른 한명만 교실 안으로 발을 들였다.
“손님 한 분 안내해주세요!”
그래 뭐, 조금 이상하면 어떠랴. 어쨌든 지갑을 열어주러 직접 제 발로 와준 손님인데. 교실문 앞에서 호객을 하던 남학생은 손님을 놓칠세라 재빨리 그를 안으로 들였다. 안에서 서빙을 하던 또 다른 남학생이 다가와 손님을 비어있는 테이블로 안내하고, 결국 그는 딱딱한 교실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버렸다.
“주문하시겠습니까?”
안내를 해준 남학생은 생글생글 웃는 얼굴이 딱 봐도 이런 일이 익숙해 보이는 느낌이었다. 카페에서 알바를 하던가, 아니면 오늘 하루 여기서 열심히 일하면서 익숙해졌든가. 어느 쪽이든 아무튼 적어도 손님을 불쾌하게 할 만한 인상은 전혀 아니었다. 순간 있는지도 알아채지 못했지만, 남학생이 혼자 이곳에 찾아온 건 처음이었다. 그럼에도 당황하지 않았을 정도로 서빙 일에 충분히 능숙해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런 남학생을 앞에 두고도 메뉴판을 보고 주문은 하지 않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하늘색 머리카락을 가진 남학생은 찾던 것을 찾았다는 듯 교실 한켠에 시선을 주다가 입을 열었다.
“이 카페는 종업원을 지명할 수 있다던데 맞습니까?”
“아, 네! 물론이죠! 원하는 사람이 있으신가요?”
“그렇다면 저기…”
사실 이 교실의 컨셉은 일일과 cafe라는 단어 사이에 아주 작게 끼여 있는 ‘호스트’라는 단어가 설명해주는 곳이었다. 컨셉 그대로 평소에 친하게 지내는 남학생이나, 좋아하던 남학생, 혹은 남자친구를 지명해서 서빙을 받고자 찾아오는 여학생들이 손님의 대부분인 카페 말이다. 입고 있는 옷이 잘 빠진 양복이 아니라 교복 위의 검은색 가르송 에이프런이라는 것만 다를 뿐 테이블마다 담당이 붙어 여학생들과 화기애애하게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은 제법 그럴듯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렇기에 남학생이 혼자 이곳에 들어온 게 더 이상해 보이는 것이기도 했고 말이다.
“아오미네 다이키로 부탁합니다.”
어쩐지 말을 마치는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남학생은 순간 제가 잘못 들었나 싶어 당황하느라 그 미소를 보지 못했다.
“네?”
“저기, 아오미네 군 말입니다.”
결국 지금까지의 유려한 웨이터의 자세를 지키던 것과 다르게 당황한 그와 다르게, 한 번 더 또박또박 한 사람의 이름을 뱉는 이의 태도는 꼿꼿했다. 그제야 손님의 요구를 제대로 알아들은 남학생은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라는 말과 함께 교실 한 구석에 놓인 의자에 앉아 무료하게 하품을 하고 있던 이에게로 도도도도 달려갔다.
그리고 그 남학생에게 지명이 들어왔다는 말을 듣고 인상을 팍 찌푸렸던 아오미네가 남학생이 가리킨 테이블을 쳐다봤다가 눈이 휘둥그레진 것은 너무도 순식간이었다.
교실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무료하게 시간을 씹어 삼키던 아오미네가 휙 몸을 일으켰다. 허리에 묶은 가르송 에이프런이 종아리까지 내려오는 남들과는 다르게 간신히 무릎을 가릴 정도로 긴 다리가 휘적휘적 움직이더니 금세 교실을 가로질러 남학생 테이블 쪽으로 다가섰다.
학급의 행사라 어쩔 수 없이 참여한다는 티를 팍팍 내며 건성건성 일을 하던 그가 그렇게 기민하게 움직인 것은 처음이라 교실 안의 다른 학생들의 시선이 그리고 꽂힌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테츠? 여긴 왜 왔어?”
“모모이 씨가 축제에 놀러오라고 초대해주었으니까요.”
“하… 사츠키……”
그렇게 말하지 말랬는데.
뻔했다. 재미있는 걸 볼 수 있을 테니까 놀러와! 아오미네 군네 반은 남학생들이 서빙을 한데! 모모이의 입에서 나왔을 문장까지 대충 어떨지 짐작이 갔다. 이러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은 건지, 자신과 쿠로코가 다른 학교를 다니고 있다는 것을 확인받는 것이 싫은 건지는 스스로도 알지 못했지만.
아무튼 아오미네는 쿠로코를 축제에 초대하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아 모모이에게도 단단히 일러두었었다. 절대로 테츠한테는 축제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사실 그 모모이가 그렇게 말해도 말을 안 할리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래도 조금은 아주 조금은 모모이가 제 말을 들어주는 걸 기대했었는데…… 이번에도 여지없이 기대는 빗나가 버렸다.
“잘 어울리는데 왜 그렇게 싫어합니까?”
“됐어. 뭐라도 마시고 빨리 가.”
“그럼 아오미네 군으로.”
“뭐?”
“여기요. 아오미네 군으로 주문하겠습니다.”
“무슨 소리야?”
“자기가 일하는 카페 메뉴판 정도는 숙지해 주시죠.”
톡톡, 메뉴판 맨 아래쪽에 있는 글자를 가리키는 손가락이 희었다. 햇볕을 받아본 적 없는 사람의 것인 양 흰 손가락이 가리키는 글자를 읽어 내린 아오미네의 눈동자가 순간 크게 뜨였다.
“아무튼 주문을 했으니…나갈까요?”
1시간 데이트. 솔직히 이 상황이 우습긴 했지만, 어쨌든 이곳에서 나갈 수 있다는 생각에 순간 아오미네도 기분이 좋아져 제 허리를 꽉 조이던 앞치마를 풀려 했다. 어쨌든 이곳을 나가면 다신 안 돌아올 거라는 마음이 조급한 손길에 그대로 보이는 듯 했다.
하지만 앞치마를 푸르는 손길은 오래가지 못했다.
“풀지 마세요. 잘 어울리는데요.”
“뭐?”
데이트는 그걸 입은 채로 하는 걸로 하죠.
슬쩍 끌어 올려 진 입꼬리가 제가 지금 진심이라는 것을 고스란히 보여주며 빛이 났다. 그 미소와 저를 교실 밖으로 끌어당기는 손길에 휩쓸려 어어어? 하는 사이에 아오미네는 에이프런을 한 채로 그대로 교실 밖으로 끌려 나갔다.
아오미네 다이키가 남자한테 픽업 당했다!!! 라는 수근거림이 토오 고등학교 2학년의 한 교실을 웅성거리게 한 것도 모른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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