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거가 있는 건 아니었다. 전부터 그의 어떠한 이상 행동을 발견해서 의심하고 있었다거나 하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알고 있었다. 그거 평범한 ‘사람’과 다른 존재라는 것은.
그렇기에 지금 같은 광경을 눈앞에 두고도 이리 놀라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알고 있었으니까. 그를 둘러싼 형상은 분명 사람이 맞았지만, 그가 사람이 아닐 거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으니까.
사실 직감이라는 말은 틀렸을지도 몰랐다. 어쩌면 피에 새겨진 약속을 자신의 직감이라고 착각했던 것이 아닐까? 하지만 운명이든 아니든, 어쨌든 아오미네의 예감은 맞았다. 지금 제가 보고 있는 광경이 그것을 증명해주고 있었으니까.
예감했었기에 놀라지는 않았지만, 아오미네는 조금 더 걸음을 빨리했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쏟아지고 있는 빗속을 날듯이 뛰어 제 시야에 들어온 광경 속으로 발을 디밀었다.
붉은 운동장의 흙은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진흙이 되었다. 평소라면 제 한정판 농구화가 아까워서라도 멀리 돌아가는 길을 택했을 것이다. 투명한 판으로 지붕을 만들어 놓은 체육관과 체육관을 잇는 통로가 버젓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1분 1초라도 시간을 줄여야 한다는 생각에 아오미네는 뛰었다. 제 1체육관과 제 4체육관 사이에 원래 이렇게 멀었나 고민했을 정도로. 그 순간에는 마음이 급했다. 어쨌든 그래서 아오미네가 체육관에 힘주어 한 발을 내딛었을 때, 깨끗한 체육관 코트에는 진한 흙발자국이 새겨졌다. 아니, 새겨 졌어야 했다.
하지만 아오미네는 체육관 안쪽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 제 신발에 묻은 진흙이 의미 없어 졌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 체육관에 발을 디디는 것은 커다란 수족관에 발을 넣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므로.
신발에 닿는 것은 단단한 체육관 바닥과 빗물에 눅눅해진 공기여야 했다. 하지만 지금 제 4체육관에는 그런 공기가 없었다. 그저 그 안을 채운 것은 오로지 물. 마치 푸른 바닷물을 신이 한 움큼 떠내어 체육관 안에 부어준 것처럼. 그 안은 찰랑이는 물로 가득 차 있었다. 신기한 것은 체육관의 허리쯤에 커다랗게 달려있는 창문들이 활짝 열려있음에도 그 물들이 밖으로 흘러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마치 보이지 않은 투명한 벽에 가로막힌 것처럼.
정말 어항 같았다. 그리고 지금 자신은 그 어항 속에 스스로 들어온 물고기 신세이리라.
아오미네는 숨을 참고, 천천히 손과 발을 움직여 물속을 헤엄쳐 안으로, 안으로 들어갔다. 체육관 안을 가득 메운 물은 정말 바닷물이기라도 했는지, 묵직한 소금기가 온몸을 쓸었다. 그것이 영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애초에 자신은 수영을 그리 오래 할 수 있는 몸도 아니었다. 지금보다 더 체온이 떨어지기 전에 어서 그를 만나야 했다. 아마, 제 폭주를 이겨내지 못하고 의식을 잃었을 그를 현실로 끌어 올려야 했다.
.
.
.
얼마나 헤엄쳤을까? 아무리 농구코트가 있는 체육관이라지만, 이렇게 넓을 리 없을 텐데. 아오미네는 제법 오랜 시간 숨을 참고 깊은 물속을 헤엄쳐 나갔다. 그 사이 신발을 더럽혔던 진흙은 깨끗이 씻겨 나갔고, 인간의 몸으로는 더는 숨을 참을 수 없어 피부 위에 검은빛이 번들거리는 비늘이 덮였다. 아마 조금 더 시간이 지난다면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할 터.
그렇게 되기 전에 빨리 찾아내야 할 텐데.
아오미네는 아마 바깥이었다면 혀를 쯧, 하고 찼을 표정을 하고 잠시 멈춰 주변을 둘러보았다. 능력이 폭주하면 공간이 어그러졌는지, 마치 깊은 바다 속에 들어온 듯 주변에는 어떠한 것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 아오미네가 잠겨있는 체육관 어항은 바다속보다 빛도 들지 않아 방향을 잡기조차 어려웠다.
결국 아오미네는 잠시 물속에서 멈춰 섰다. 그리고는 길을 잃은 사람이 나아갈 길을 고민하듯 머리를 긁적이더니 이내 결심했다는 듯 앞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테츠!!!’
뻐끔뻐끔, 물고기가 먹이를 위해 입을 벌리는 듯한 동작이었다. 당연히 소리가 나올 리 만무했다. 하지만 아오미네는 확실히 외쳤다. 제 감을 믿고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물속을 향해 목청을 울렸다. 그의 이름만을 힘껏 외쳤다.
‘테츠!!! 어딨어!!!’
꾸룩꾸룩 입 안으로 물이 밀려드는 괴로움에도 아오미네는 그 부름을 멈추지 않았다. 제 물음에 언제나처럼 상대가 화답해 줄 거라 굳게 믿는 듯했다. 어제 길 건너편의 그를 소리쳐 불렀던 그 때처럼, 그가 저를 돌아봐 줄 거라고.
그리고, 생각보다 그 믿음에 대한 답은 빠르게 돌아왔다. 웅웅, 물이 몸을 떨 듯 가는 떨림을 전했다. 그리고 그 떨림에는 아오미네가 그토록 찾던 목소리가 깊이 스며있었다. 아오미네 군. 저를 부르는 간절함에 간신히 정신을 차린 이가 아오미네를 부르고 있었다.
눈을 감고 집중에 목소리를 듣던 아오미네는 천천히 손을 올렸다. 그리고 마치 그 앞에 제가 찾던 이가 있기라도 한 것처럼 가볍게 허공을 손으로 쓸었다. 제 어깨에도 제대로 미치지 못하는 위치에 있는 동그마한 머리. 조금 짧아 이마를 간신히 가릴 정도의 하늘색 머리카락 아래 박힌 물을 머금은 눈동자. 콧망울이 동글해서 귀여운 콧날 아래 인중을 따라 내려가면 제가 완전히 머금을 수 있는 조금 얇은 입술이 있었다.
‘돌아와, 테츠.’
돋아나듯 피부에 올라온 검은 비늘들이 천천히 사라져갔다. 그것은 마음의 동요가 진정됐다는 뜻이기도 했다. 아오미네는 조금 더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부러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느새 입 안으로 밀려들던 물이 사라졌다는 걸 문득 깨달았다. 그리고,
“아오미네 군…”
이게, 대체?
그렇게 묻는 눈동자는 마치 막 꿈에서 깬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직도 제가 방금 전까지 겪던 감각들이 현실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듯한 기묘한 표정. 하지만 아오미네가 저를 불렀고, 그렇기에 그 부름에 응답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만은 확실했다.
이내 허공을 쓰다듬던 아오미네의 손 안에 묵직한 온기가 차올랐다. 아오미네는 간신히 손 안에 돌아온 보드라운 볼을 쓰다듬다가 천천히 앞에 있는 이를 끌어 당겨 품에 안았다. 좋아, 괜찮아. 돌아왔어. 이제 괜찮아.
하지만 아오미네는 곧 물로 푹 젖은 축축한 몸에 닿는 차가움에 모든 것이 완벽하게 돌아온 것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살랑, 잠자리의 날개 같은 얇은 지느러미가 달린 꼬리가 천천히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제 품에 완전히 몸을 기대고 있던 쿠로코도 이윽고 무언가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가 화들짝 놀란 눈으로 다시 아오미네를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아오미네는 오히려 그런 쿠로코보다 놀라지 않은 표정으로 자연스럽게 다리를 굽혀 몸을 숙였다. 그리고는 제게 기대 있던 이의 몸을 안아 올렸다. 중학생답지 않은 제법 단단한 근육이 붙은 오른 팔은 쿠로코의 등을 단단하게 받쳤다. 그리고 다른 왼손은 푸른 비늘이 반짝반짝 빛을 발하고 있는 지느러미로 된 하반신을 받치고 있었다.
“괜찮아. 일단 돌아가자.”
돌아가서 설명해 줄게.
그 말을 끝으로 아오미네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어느새 물이 있었던 것을 믿을 수 없게 전부 말라버린 체육관 안을 깨끗하게 닦인 농구화가 꾸욱꾸욱 밟기 시작했다.
인어 흑자와 각성한 인어들을 지켜온 용족의 피를 물려받은 가문의 아오미네 정도...
약간 수호자같은 느낌으로 흑자를 지켜주는 현대 판타지같은 걸 쓰고 싶었던 적이있어서 대강 틀만 잡아놨던 설정이었는데... 주제보고 갑자기 생각나서 괜히 프롤같은 걸 슥슥...
아마 더 쓸일은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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