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인사는 지금까지 아오미네가 살면서 들어본 인사 중에서 가장 정중한 목소리로 이루어졌다. 군이라니,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그런 호칭을 들어본 적이나 있었던가? 사실 중 고등학교 시절 즈음에는 자신보다 연상인 사람이 장난삼아 그렇게 부르는 일이 있을 법도 했지만. 아오미네에게 함부로 장난을 걸만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아오미네는 반 농담으로라도 인상이 좋다고는 할 수 없는 스타일이었고. 키 또한 반에서 가장 큰 사람이라는 타이틀을 놓치지 않을 정도로 거대했다. 누군가를 압도하기 위한 최적의 조건을 갖춘 그에게 쉬이 장난을 걸 사람이 누가 있으랴. 그렇기에 아오미네가 자신의 성에 붙은 ‘군’이라는 호칭을 들은 것은 오랜만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아오미네는 그 어울리지 않는 호칭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그것보다 훨씬 더 놀라운 현실에 온 신경을 빼앗기고 있었으니…….
“처음 뵙겠습니다.”
앞으로 깊이 숙여지는 고개를 따라서 하늘빛 머리카락이 앞으로 쏟아져 내렸다. 약간 덥수룩한 느낌이 들 정도로 기른 머리카락은 가늘기 때문인지, 제 주인의 움직임을 따라 사륵사륵 잘도 움직였다. 마치 파도가 넘실대는 것도 같았고, 푸른 모래가 바람에 날리는 것도 같았다.
숙여졌던 고개가 다시 들렸다. 마치 연극 무대의 막을 내릴 때, 관객들에 배우가 건네는 인사처럼. 지극히 정중히 숙여졌던 고개가 완전히 들린 순간. 그제야 아오미네는 방금 전까지 시야 가득 담겨있던 머리카락 색과 같은 눈동자를 마주할 수 있었다. 마치 수정을 닦아낸 듯, 깨끗하기 그지없는 한 쌍의 눈동자. 하지만 아오미네는 오롯이 자신을 담고 있는 그가 어딘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분명 그 눈동자는 시선을 맞추며 아오미네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표정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 하다못해 인간의 말을 할 수 없는 동물도, 이렇게까지 텅 비어있지는 않으리라. 그 정도로 사내의 얼굴에서는 그 어떤 것도 느낄 수가 없었다. 말하자면 완벽한 無. 누군가 이 사내는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조각이라고 말한다면, 당장에 믿어버렸으리라.
그런 이가 지금 아오미네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숨을 쉬는지 조차 의심되는 표정으로, 자신만을 꾸역꾸역 시야 속에 집어넣고 있었다. 아, 그런 건가. 아오미네는 그제야 자신이 느낀 위화감의 원인을 알아챘다.
눈은 마음의 창구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그렇기에 상대를 바라보게 되면, 지금 자신이 상대에게 품고 있는 마음이 숨길 수 없이 조금쯤은 드러나기 마련이었다. 상대에게 불만이 있을 때도, 상대에게 호감이 있을 때도. 말을 하기 전에 감정이 흘러나와 얼굴을 적시며 표정을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아오미네를 바라보는 이의 시선에는 그것이 없었다. 시선은 있었으나, 감정이 없었다. 그것은 손이 닿았으나, 체온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리라.
“저는 쿠로코 테츠야라고 합니다.”
이윽고, 아오미네는 색이 옅은 입술이 천천히 벌어지는 것을 보았다. 지금까지 일자로 굳게 다물어져있던 입술에서 하얗게 마른 석고가 떨어지는 건 아닐까 하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로 지금 이 순간은 아오미네에게 묘하게 비현실적이었다. 정신을 차린 자신의 앞에 갑자기 나타난 사내. 온통 흰 벽으로 둘러싸인 널따란 집 안. 발목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은색 쇳덩어리의 감촉.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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